세관에 앉은 마태

2025. 1. 22. 11:49말씀 묵상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을 가장 힘들게 한 사람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이완용을 위시한 친일 주구 세력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활동하던 시기에 죄인의 대명사는?
세리와 창기였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첨언하자면,
당연히 우리 나라를 강제로 병합한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점령군을 주둔시킨 로마를,
제외하고 하는 말입니다.

요즘 당연한 것들을 시비하는 삐딱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죄인의 대표라 할 세리 마태를 부르십니다.
그것도 조용하고 은밀하게 부르지 않고 공개적으로 부르십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오래 전에 백악관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안내하던 미국인 교수께서 백악관 옥상에서, 
한 건물을 가리키면서 하시는 말씀이,
"저 건물을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고?
의아해 하는 우리를 본 그 교수님 왈.

"국세청입니다"

납세의 의무를 당연시하는 자본주의 민주 국가 미국에서,
그것도 교양과 시민의식이 투철한 교수가,
일반 시민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그 말에,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세금을 사랑하고 좋아 할 사람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했습니다.

하물며 피식민지 국민인 이스라엘 입장에서 볼 때,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세금을 징수하는 세리가,
눈엣가시처럼 성가시고 얄미운 존재였으리라!

바로 그런 사람 마태를 주님께서는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것도 공개적인 장소 세관에서,
거드름 피우며 앉아 있는 마태를,
사람들이 속으로 수근대며 욕을 하는 마태를
대놓고 공개적으로 부르십니다.

"나를 따르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새삼 확인합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정의감에 사로잡힌 젊은 시절에는,
교회에는 의롭고 깨끗한 사람만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습니다.

그랬더라면 나도 당신도 구원에서 멀어졌으리라!

마태와 같은 죄인을 불러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죄인을 불러 주시고, 
오래 참으시니, 
오늘의 내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벧후 3:15)

물론 교회에 나와서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덕이 되는 최선입니다만.

그 전제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부르심이 먼저라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합니다.

죄인을 부르신 바로 그 부르심으로, 
나도 구원을 받았고,
당신 또한 죄 사함을 받았으며,
우리 모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놀라운 은혜요 감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저와 당신을 오래 참으신 것처럼,
더디 변화되는 사람을 오래 참고,
인내로 지켜 보며 기도할 일입니다.

주님!
세리 마태처럼,
죄인인 나를 부르셔서 제자 삼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태라는 이름처럼,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받았으니,
선물 같은 인생 아름답게 향기 되어 살겠습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5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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