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3. 09:56ㆍ말씀 묵상
순종이란?
일어나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신 자리는?
세관에서 매국노라는 수근댐을 들으며,
로마의 앞잡이로서 세리 노릇을 하면서,
호의호식을 하면서도,
욕과 원망을 듣는 자리였습니다.
바로 그런 형편과 처지에 있는 마태를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마태를 부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신 주님도 위대하지만,
그렇다고 "일어나 따른" 마태는?
마태 또한 대단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찌 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결정입니다.
"일어나 따르니라"
아니, 그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세관에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릅니까?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대단히 어려운 결정입니다.
그동안의 삶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눅 9:23, 고후 5:17)
일제 강점기에 친일 주구 고등계 형사 노릇을 하다가,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목숨을 걸고 싸운 것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사람 정도라 할 수 있으리라.
이쯤해서 새삼스럽게 믿음을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입니다.(롬 10:17)
믿음은 자기의 처지를 주목하는 것이 아니고,
부르신 주님을 바라보고,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부르신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히 12:1-3)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마태는 그가 앉은 자리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세관에 앉았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가 해왔던 세리의 일이,
민족의 피를 빨아 먹는 매국노였다는 사실에도,
구태어 얽매이거나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마태가 주목한 것은?
오직 그를 부르신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주님의 부르심만 주목하고 집중했습니다.
욕을 먹는 자리.
호의호식이 보장된 자리.
육신의 안위와 정서적인 혼란이 함께하는 자리.
그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주님의 부르심에 일어나 따랐습니다.
"일어나 따르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구원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바로 그 구원의 주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선물답게 마태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처지와 형편에 매이지 아니하고,
일어나 따르는 위대한 결단으로 순종한 덕입니다.
거룩한 믿음의 유산을 남긴 시인의 고백을 읇조려 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시 42:5-6 개역)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11 개역)
어떤 형편에 있을찌라도,
구원의 주님을 바라고 앙망할 때,
도우시는 주님의 은혜로 찬양하게 되리라.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5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