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에 대한 오해

2024. 10. 14. 11:23말씀 묵상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비판하지 말라 하셨으니,
세상 만사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라는 말인가?

결코 그럴리가 없습니다.

만약 주님께서 범사를,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라는 의미로 말씀하셨다면?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를 책망하지도 않았으리라.
그들이 거래하는 좌판을 엎으시지도 않았으리라.

제사용으로 매매되는 소나 양도 내어 쫓지 않았으리라.(요 2:13-17)

주님의 분명한 목소리는 이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 2:16)

성전을 사모하며 올라오는,
순례자와 예배자들이 먼 길 마다 않고,
제사용으로 가져온 제물이 흠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선한 의도로 시작했던(?) 판매용 제물이,
이익 편취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으셨던 까닭입니다.
 
만약에 시시비비를 가리지 말라는 뜻으로 말씀하셨다면?

주님께서 외식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소름 끼치는 정죄를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우리를 성찰하는 거울로 삼는 것처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무섭고 엄하게 책망하셨습니다.(마 23장)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그것도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한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님의 말씀을 천천히 음미합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새번역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 것이다."(마 7:1-2 새번역)

입으로 비판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내 잘못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잘못이 더 잘 보이닌깐요.

그러나 터진 입으로 비판하는 만큼, 
내가 반듯하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비판하기는 쉬워도 살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살아내기 어렵다 해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분멸조차 말아야 할까요?

시시비비가 마비된 세상은, 
마침내 동물농장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비판은 필요합니다만,
습관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비판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할 것이로되,
정죄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절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비판하다가 심판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겸손하게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1-2)

우리는 비판하는 자로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짐을 서로 짐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할 자로 부르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덮어서 볼 일입니다.

결심하고 또 결심해도,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 나오는, 
비판과 정죄의 칼날을 칼집에 넣어야 하리라.(마 26:52)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비판하다가 정죄로 기울어지기 십상입니다.

비판하다가 나도 몰래 심판의 자리에 않기 십상입니다.

정죄와 심판은 우리 몫이 아닙니다.

"나는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내가 의롭게 된 것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는,
아무 것도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을 환히 나타내시며,
마음 속의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고전 4:4-5 새번역)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고전 4:4)

심판은 주님의 몫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자로 재림하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삼위일체 되신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겸손하게 성부 하나님의 몫이라고 선언하신 까닭을 명심합시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면 마음에 쉼을 얻습니다.(마 11:29)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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