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0. 11:23ㆍ말씀 묵상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데 훈수를 해보셨습니까?
내가 직접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보다 얼마나 잘 보이던지요!
정확하게 통계나 수치로 확인한 적은 없습니다만.
실제 그 사람의 실력보다 한 두 단계 위의 실력으로 훈수를 둔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2002월드컵 경기를 직관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플레이를 하는데,
거의 모든 관중이,
감독과 코치를 겸하던 장면이,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눈에 선하고 귀에 쟁쟁합니다.
축구 직관 관중들만 그럴까요?
그럴리가요!
스포츠 중계를 상당히 즐깁니다.
즐겨 보는 야구와 여자 배구를 오랫동안 보다보니,
나도 모르게 선수들의 경기에 참견을 하게 됩니다.
현실에서는?
야구공을 제대로 때려본 것은,
평생에 한번 뿐입니다.
배구공은?
토스하다가 손가락이 뒤집어지는 바람에,
배구를 직접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그런데도 야구와 배구를 보다가,
플레이에 참견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합니다.
이렇게 내가 직접 해본 적이 거의 없는,
운동 경기를 보면서도 참견하고 싶어서 안달이거늘!
하물며 평생 사명으로 감당하던 목회를 보면은 어떻겠습니까?
소명 이후,
40년 목회자로 살며,
이런저런 목회를 감당해왔으니,
나름 전문가라 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에서 25년 담임으로 목회하고,
은퇴하여 원로목사로 추대되었으니,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목회 분야에 일가견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
교회 주변부터 시작되는 안내.
찬양과 봉헌.
예배의 진행과정.
목사의 설교.
등등....
은퇴 이후 4년 동안,
설교가 없는 날은 교회순례를 했습니다.
설교의 유창(?)여부를 떠나서,
그 목사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는지,
바쁘게 쫓기다가 대충 설교하는지,
열심히 준비는 한 것 같으나 기본이 딸리는지,
몸과 마음과 영으로 절감합니다.
성의 없는 안내.
준비가 부족한 찬양.
매끄럽지 못한 예배의 진행 과정.
등등....
눈에 띄고,
귀에 거슬리며,
뭔가 부촉해보이는 것들이,
본의 아니게(?) 보입니다.
물론 많은 경우,
예배자로 오는 분들을 정성껏 영접하는 안내에 감동을 받고,
정갈하고 겸손하게 준비된 예배를 드리면서,
교우들과 함께 은혜를 받고,
몸도 마음도 영혼도 얼굴도 밝아집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고,
귀에 거슬리는 것들을,
그리고 아쉽고 개선하면 좋을 것들을,
후배 목사들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하느냐?
결심하고 입을 다뭅니다.
묻지도 않는데 참견하는 것은?
꼰대의 오지랖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꼭 한번 안타까운 마음으로 참견한 적은 있습니다.
그 목사님과 사모님의 청년시절을 지도했던 인연으로,
지금까지 교제하며 지내는,
후배 목사가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 후에,
개선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결국은 꼰대짓이 되지 않았을까요?
묻기 전에는 말하지 않는 것이 좋았으리라!
이처럼 꼰대짓을 아니하기로 결심한 배경이 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1-2)
마태복음 7장은 청년시절부터 암송한 말씀입니다.
지금도 군데군데 멈칫할 때가 있지만 거의 암송합니다.
군대 통합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일 때도 암송한 말씀이고,
목회하면서 제자훈련을 하면서도 반복해서 암송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마태복음 7장이 입과 마음에 있으니,
그 말씀이 제 입을 다물게 합니다.(신 30:11-14)
"그 입 다물라"
그렇다고 전혀 남을 비판하지 않고 사느냐?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사느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여전히 비판도 하거니와 시시비비도 가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새겨진 이 말씀으로,
입술로 암송되는 이 말씀이,
시시때때로 내 입을 막습니다.
할렐루야!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에는 실족함이 없으리로다"(시 37:30-31)
내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둘 일입니다.
그대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길 일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10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