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했던 순간

2024. 7. 15. 13:26말씀 묵상

인권과 민주화가 많이 발전한 요즘도,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군기사고가 뉴스에 등장합니다.

하물며 1970년대 대한민국 군대는 얼마나 심했으랴?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를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
이런저런 수치를 설명한 내용을 보았습니다만, 
청력이 좋지 못하다는 소견도 보았습니다.

청력?

듣는 기능이 많이 손상되었다는 것인데,
사실 군시절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신입들의 군기를 문제 삼은 고참들이, 
중고참인 나와 동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내 뺨을 때린다는 것이,
때릴 줄도(?) 모르는 시원찮은 고참이 내 귀를 때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천둥과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그때 오른쪽 고막이 나가고 말았습니다.

귀에는 천둥이 울리고,
눈에는 번개가 번쩍하는 순간에,
관물함에 비치된 대검이 눈에 띄었습니다.

군기를 잡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긴다손 치더라도,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군기를 넘어서 폭력을 행사하던, 
그 나쁜 고참의 얼굴과 이름은 물론, 
그들의 고향까지도 선명합니다.

경상남도 고성 사람 허ㅇㅇ.
전북 남원 출신 최ㅇㅇ.
(실명을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익명 처리합니다)

귀에서 천둥이 울리고 눈에서 번개가 번쩍하던 순간에,
본능적으로 올렸던 가드를 내렸습니다.

"너희들 맘대로 때려라. 나도 모든 것을 내려놨다."

심상치 않은 내 모습에, 
이상 기류를 눈치 챈 비교적 상식적인(?) 고참들의 만류로, 
군기 아닌 폭력은 끝났습니다.

그러나 나는 한참을 그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함께 맞은 동료와,
비교적 상식적인 고참이, 
나를 끌고 다른 곳으로 갈 때까지,
오만가지 생각이 왔다갔다 했습니다.

군대생활 여기서 끝내?
인생 여기서 정리해?
저 두 놈을(?) 대검으로 발라버려?

천둥소리와 번쩍이는 번개처럼 찰나의 순간에,
번개만큼 빠르게 오만가지 생각들이 오갔습니다.

순간의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려는 순간,
바로 그 아찔했던 순간에,
주님께서 제 머릿속에 떠올린 말씀입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 편도 돌려 대며"(마 5:38-39 개역)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 개역)

우연하게도 군입대 전 청년시절,
교회 청년회에서 공부하며 암송했던 마태복음 5장의 말씀으로,
주님께서 저의 막가려는(?) 행동을 막으셨던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하늘 보다 높고,
바다 보다 깊은,
모든 것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고개 숙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찔했던 순간에 본능의 지배를 받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물론 없고, 
그들도 없어졌을 것입니다.

비록 고막은 손해를 봤습니다만,
그 대신 생명을 얻고 자유를 얻었으니,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유익을 얻었습니다.(마 5:29-30)

그날 이후로 저는 수영을 못합니다.
물놀이를 하며 고개를 물에 담그는 순간,
귓속으로 침투하는 물로, 
오랫동안 이비인후과를 드나들게 되닌깐요.

거의 30년이 지날 때까지,
조금만 과로하면 귀에서 물이 흐릅니다.

과로하지 않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고,
나름 애를 많이 쓰고 살았습니다.

다행히 주님께서 귀에 물이 흐르는 것은 만지시고 고쳐주셨습니만.

수백번 신약성경을 읽을 때마다,
마태복음 5장 38-39를 읽으면,
아찔했던 순간이 떠오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때 참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 마음을 붙들어주셨기에, 
오늘의 전중식목사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을 다 감당하려면?
제 명대로 살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친한 친구 목사 왈.
"나는 우리 집에 선지자를 모시고 삽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예언을 모두 들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나는 선지자의 말씀 중에서 40퍼센트만 듣습니다."

저도 그 사건 이후로도, 
오른 편 뺨 때리는 사람에게 왼 편 돌려 댄 적?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동료나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권합니다.

"사람은 뒤끝이 있어야 해!"
"뒤끝이 없으면 무시를 당하거든!"

그러나 분명한 것 하나는 이것입니다.
 
그때 딱 한번,
주님께서 말씀으로 말리심에 순종한 덕에,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가, 
오늘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순종?
계속 순종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딱 한번만 순종합시다.
다음은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의 일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2024년 7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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