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1. 22:58ㆍ말씀 묵상
예수님께서 입으셨다는 수의.
그 수의가 진짜냐 가짜냐?
여전히 논쟁 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떠냐구요?
솔직히 말하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논란 중인 수의가 보관된 트리어 대성당에 왔으니,
들여다는 봐야겠지요.
물론 보고싶다고 볼 수는 없고요.
철장 넘어 보관된 수의 상자만 멀리서 보고,
봤다는 증거 사진만 한 컷!
관심은 없었지만,
정작 수의 상자를 보고나니,
생각이 많아집니다.
수의가 진짜냐, 가짜냐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과연 수의를 저토록 끔직하게(?) 모시는 것을 어떻게 보실까?
독일에서 로마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았다는 고대 도시답게,
오래된 흔적들이 여기저기.
그러나 잠시 스치고 지나왔지만,
공산주의 창시자인 칼 막스가 우뚝 선 모습이 내 생각을 사로잡습니다.
칼 막스가 이곳 출신이라며,
"트리어의 아들"이라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설명은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하더군요.
헐벗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칼 막스"의 사상을 잘못 사용한 독재자들이 문제지,
칼 막스의 사상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레드 콤플렉스에 짓눌려 살아왔던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독재자들이 빨간 딱지를,
정적들과 반대파를 억압하는데 남용하던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참 여러가지 생각들이 겹쳤습니다.
공산주의 실험은 역사와 공동체에서 대체로 실패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내가 볼 때는?
인간이해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까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칼 막스가 없었다면?
자본주의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칼 막스 덕분에,
자본주의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그나마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요?
인간의 탐욕과,
타락한 본능은 강력한 브레이크가 없다면,
무한질주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유 10)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탐심.
본능.
욕심.
반드시 절제하고 통제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리고,
공동체도 삽니다.
절제하면 최상이고,
통제라도 받으면 다행입니다만.
절제도 안되고,
통제도 불능이면,
브레이크 없는 탱크가 되기 십상입니다.
마침내 사망에 이르러야 비로소 멈춥니다.
개인의 삶이든,
집단의 흐름이든,
민족과 국가의 흥망성쇠든,
계속된 인류역사의 부인할 수 없는 결론입니다.
성경에 찾을 수 없거나,
찾지 못하도록 감춰진 것들이 있습니다.
모세가 잠든 무덤.
모세가 만들고 하나님께서 새겨주신 돌판.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시신.
승천하셨으니 다행이지!
만약 몸을 남겨두시고 영혼만 승천하셨더라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합니다.
돌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가 보관된 언약궤가 실종된 것 또한 얼마나 다행인지요?
이 땅에 그것들이 그대로 남겨졌더라면?
장사진을 넘어서,
서로 차지하겠다고 으르렁거리며,
전쟁이 그치지 않았을 터!
하늘 성소로 옮겨가셨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계시록)
수의?
물론 소중한 증거 자료가 되겠지요!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껍데기에 집중하는 우리들의 허세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타락한 권세자들과,
탐욕에 붙들린 부자들과,
엉거주춤 발맞추며,
탈취물 나누기에 바빴던 종교에 대한,
강력한 제동장치를 주창했던 칼 막스.
공산주의를 내세워,
독재의 칼을 휘두르기에 앞장선 사람들.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그 후계자들.
중국의 마우쩌뚱과 대부분 공산국가들이 독재로 기울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피를 흘렸던 것은 인류역사에서 히틀러를 넘어선,
피의 역사였습니다.
인간이해가 잘못될 때,
도출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이라 할 것입니다.
어쨌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인류역사가 이만큼 진보하는데,
음으로든 양으로든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칼 막스가 나고 자란 곳이라는 흔적.
예수님의 수의,
칼 막스의 사상.
껍데기는 가라.
본질을 추구하라.
껍데기 말고,
본질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는,
내 나름의 소중한 결론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2024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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