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9. 23:22ㆍ말씀 묵상
독일의 관문 프랑크푸르트.
독일 금융의 센터이자,
EU 금융의 허브인 프랑크푸르트는,
또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고향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말하면,
여행하면서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동안 괴테하우스나 역사 박물관을 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억되거나 남는 것은 역시.
내가 언제 또 프랑크푸르트를 오겠는가?
그래서 그동안 지나치기만 했었던,
괴테의 생가를 복원한 괴테하우스를 찾았습니다.
조그만 3층 건물인데,
입장료는 만만치 않은 10유로.
역사 박물관도 8유로.
삐그덕거리는 나무계단을 오르내리며 괴테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한국인에게는,
독일이라는 나라와 독일인들이,
비교적 긍정적으로 오리엔테이션이 되어 있습니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이지만,
육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국민들이지만,
직접 피해 당사자가 아닌 까닭입니다.
아무튼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나라.
근면 정직하고 성실하며 질서를 잘 지키는 국민성을 가진 나라.
더구나 한국 경제가 일어나려 할 때, 차관은 물론 광부와 간호사를 불러서 써준(?) 나라.
한국이 가난할 때,
많은 유학생들을 비교적 수월하게 공부를 시켜준 제도와 품을 가진 나라.
긍정적인 이미지는 그냥 심어질 수 없습니다.
과오를 씻고,
지난 날을 용서받고,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나기까지는,
끊임없는 인내와 자기 반성으로 점철되어야,
비로소 그 진정성이 인정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 독일은,
종교개혁 원조 나라답게,
내부 국민들 중,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반발을 다스리며,
갈등을 비교적 잘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과 견원지간인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독일과 독일인들이 보여준 겸손과 인내를 기대하는 것이,
연목구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심지 않고 거둘 수는 없습니다.(갈 6:7)
씨를 뿌려야 때가 되면 거두는 법.(시 126:5-6)
선한 사람은 선을 거두고,
악한 사람은 악을 거둡니다.(마 12:35)
아무튼 거금(?)을 지불하고 입장한, 괴테하우스와 역사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다양한 느낌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2차 대전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었던 프랑크푸르트의 폐허가 된 모습과,
파괴되기 전 1800년대의 모습은,
마치 하늘과 땅의 차이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그런 엄청난 차이를,
철저한 고증과 기술력으로 복원해 낸,
독일인들의 저력과 끈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괴테하우스도 그렇게 복원되어,
많은 독일인들과 외국인 여행자들이,
계속해서 찾는 곳입니다.
나 같이 비교적 무관심한 사람조차 마침내 들렀으닌깐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만.
인류역사에 등장한 천재를 들자면?
다빈치와 괴테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빠지지 않습니다.
독일인들이 내세우고 존경하는 인물에도 루터나 괴테는 빠지지 않습니다.
괴테의 생가를 복원한 괴테하우스는,
여러 사람들을 소환하고 있었습니다.
괴테의 부모와 형제 자매.
그리고 괴테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게다가 괴테와 관련된 작품 속 인물과,
괴테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괴테 가문과 연관된 많은 사람들을 불러내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대문호 괴테.
정치가.
과학자.
천문학자.
철학자.
광물학자.
한 사람 속에 내재된 역량과 축복이 이렇게까지 다양하고 특출할 수 있다니요?
괴테가 많은 작품을 구상하고 남겼다는 키가 높고 큰 책상을 보면서,
내가 사용 중인 스탠드 책상에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아무튼, 글쎄!
우리 조상 가운데,
괴테 근처에 접한 한 사람을 뽑으라면?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으려나?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
어찌 인류역사에서 손가락으로 꼽는 인물과 감히 비교하랴?
다만 내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 만큼은!
믿는 사람이라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마땅히 긍정적인 인식과 추억을,
심어주고 남겨야 할 터.(딤전 5:8)
예쁘고 아름다운 생각과 추억으로 간직되는 사람으로 살아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의 믿음과 삶에 대하여 대납할 말을 준비하는 것이리라.(벧전 3:15)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기 전,
마인강 철교에 올라 주변을 감상했습니다.
유람선은 물론 화물선도 오락가락.
더구나 철교는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런데 여기나 저기나 사람들의 심성은 같은 모양입니다.
철교가 무겁다고(?) 느낄 만큼 많은 자물쇠들이,
여기저기 변치 말자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습니다.
자물쇠로 다짐한 저 많은 사람들은.
과연 변치 않고 잘들 살아내고 있을까?
너나 잘하세요!
괴테하우스를 나오면서 품은 다짐.
별 감동없이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다시 읽기.
그리고 조금 읽다가 덮었던 "파우스트" 완독하기.
"너나 잘하세요"가 맴도는 까닭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2024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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