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3. 09:52ㆍ말씀 묵상
산상보훈 8복 중에서 늘 가슴에 품고 살아온 말씀입니다.
8복 중 어느 것이 귀하지 아니하오리요만.
산상보훈의 모든 말씀이 주옥 같은 말씀입니다만.
소명 이후 목회자로서 살아오면서부터,
그 어떤 말씀보다도,
우선적으로,
스스로 내 자신에게 적용시킨 말씀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화평.
평화.
샬롬.
평안.
평강.....
너무 단어나 문자에 매일 것 없습니다.
큰 틀에서 내가 가는 곳에 평화가 있는가?
내가 목회하는 교회에 화평이 있는가?
내가 주제하는 당회가 화기애애한가? 아니면 살벌한가?
내가 진행하는 제직회는 별 탈 없이 평화로운가?
내가 책임을 진 공동의회는 별 문제 없이 회의를 마치는가?
나는 목회하면서 방법이 다르다고 다투지 않았습니다.
목회의 전문가인 내 생각이 더 좋더라도,
내 생각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목회와 신학으로 보거나,
신앙적으로나 지식으로 보더라도 ,
더 효율적인 것을 몰라서 마다해도,
설득이 되지 않으면 추진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발전하고,
수적으로 성장해도,
분란이 생기면 도루아미타불입니다.
열심있는(?) 목회자들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교회가 어려워지는 것을 많이 목격했으닌까요.
조금 더 발전하면 뭐합니까?
수적으로 더 성장하면 뭐합니까?
싸우려고 목회하는 것 아니지 않습니까?
전투하려고 신앙생활하는 것 아니잖아요?
그래서 교인들 갈라치기하는 목회는 안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교인들을 편가르기하는 설교는 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화평하게 만드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아들이니깐요.
하나님의 자녀라면 화평을 도모해야 하닌깐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내가 가는 곳에 평화가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딸인 내가 속한 곳에,
화평이 도모되고 있습니까?
목사요 장로며 집사요 권사인,
내가 몸담은 공동체가 평화로운가요?
아니면 내가 가는 곳마다 분란이 생기던가요?
갈라치기하는 것을 열심으로 착각하지 말 것입니다.
다른 사람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을 신앙의 순수로 착각하지 말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자신의 생각을 고집하는 것을,
신념이나 신앙의 열심으로 포장하지 말 것입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화평 대신 싸움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녀 노릇을 잘 감당하지 못한 까닭일 수 있습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천성적으로 peaceful한 것도 은혜요 축복입니다만.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화평하게 하는 자는?
peaceful을 넘어서 peacemaker입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내가 가는 곳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오늘도 몸담은 곳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화평을 도모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임을 확증하십시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5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