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고 목마른 자

2024. 4. 29. 10:12말씀 묵상

너무 많이 먹어서, 
비만 해결이 국민건강 우선 순위가 된 나라에서, 
주리고 목마른 것을 언급하는 것은, 
쉽게 와닿지 않는 문제입니다.

손만 뻗으면 먹을 것이 있고,
버튼만 누르면 맘대로 마실 것을 고를 수 있거늘!

그것을 은혜와 축복으로 여기고들 살고 있는지?

하지만, 
NGO 단체의 홍보영상이 아니어도,
현실적으로 남 아시아 가난한 나라와,
대부분 아프리카 국가들과 남미의 여러 나라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양식이 없어 주린 자가 복이 있다는 것 아닙니다.
물이 없어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는 것도 아닙니다.

양식과 물이 없어 주려 죽는 사람들에 대한 해결은,
일정 부분 비만 문제를 앓는 국가들의 책임과 의무라 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는 단순한 옳고 그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이 이루어지는 것.
구원의 복음이 가득하게 펼쳐지는 세상.
하나님께서 공의로 다스리는 세상.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이, 
온누리에 가득 펼쳐지기를, 
기다리고 기대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라야, 
마침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소위 세상적으로 잘 나가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예수님을 배척하고 조롱하며,
심지어 로마 당국과 손잡고 십자가에 죽이는 데,
앞장 서거나 일조 혹은 방조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
즉 세리와 병자, 
그리고 자기의 죄를 자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마 9:9-13)
 
오죽하면 주님께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2)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을 청하셨습니다.(마 11:28-30)

고기를 잡던 베드로가,
자기의 죄를 고백하고 주님을 따라가서 제자가 된 것도,
내용을 뜯어보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까닭입니다.(눅 5:1-11)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던 사울이,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한 비늘이 떨어지고, 
영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사도 바울이 된 것도,
곤고하고 비참한 자기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행 9:1-22, 롬 7:15-25)

통전적으로 해석하자면, 
"의에 주리고 목마른 것"을 확인한 까닭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 의"말고 "하나님의 의"라고 고백합니다.(롬 3장)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고 기다린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의가 충만하게 이루어지는,
그런 멋진 세상을 맛보고 누리며 살아갑시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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