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4. 10:17ㆍ말씀 묵상
산상보훈!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주옥같은 교훈.
보배같은 말씀.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암송하려고 애를 쓰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산상보훈은 첫번째 교훈에서부터 어렵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니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다행히 마태복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은 그냥 "가난한 자"라고 기록했거든요.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눅 6:20)
마태는,
"무리를 보시고"(마 5:1)말씀하셨고,
누가는,
"제자들을 보시고" 말씀하셨다고,
구별하기도 합니다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을 함께 해석하고 묵상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40년 목회하면서,
이 부분을 마주할 때마다 부딪쳤던 문제입니다.
어제도 평창 이곳저곳을 보고,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처음으로 비포장 도로 드라이브를 하면서도 수시로 꺼내서 생각했던 말씀입니다.
역시나 마태와 누가를 묶어서 해석하려니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묶지 않고 나누어서 해결하기로!
내가 산다람쥐라는 별명을 붙여준 후배 목사가 어느날 묻습니다.
"가장 좋은 산이 어떤 산인지 아십니까?"
"그건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아냐?"
속으로 그리 생각하고 망설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산이 제일 좋은 산입니다"
선문답 같지만,
후배의 그 말은 두고두고 곱씹을만한 명언입니다.
가까워서 언제라도 갈 수 있어야 좋은 산이지,
멀리 있거나 외국에 있어서,
마음뿐 쉽게 갈 수 없다면?
명산은 되려니와,
내게 좋은 산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옥같은 말씀이지만,
얽힌 매듭처럼 꼼짝도 못하게,
해석하기 어렵다면,
어찌 산상보훈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마태가 기록한 산상보훈의 말씀을 그대로 받으렵니다.
누가가 기록한 말씀과 묶지 않고.
그림의 떡은 그림일 뿐입니다.
마태와 누가의 기록을 묶어서 해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려니와,
쉽지 않고,
어렵고,
심지어 불가능하다면?
그래서 따로 떼어서 생각하렵니다.
물론 주님께서 특별한 은혜와 영감을 주셔서 해결이 시원하게 된다면야,
그때는 그보다 좋을 수가!
그때를 기대하며 지금은 넘어가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이 겸손한 자.
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음이 겸손한 사람.
영혼의 결핍을 느끼고,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고,
주님의 도우심과 능력이 없다면,
도저히 천국의 축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겸손한 영혼이라야 구원을 받고 하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
하늘나라의 진리를 가르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실 때도
제사장 그룹이나 지도층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역하고 배척하며 조롱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못했거든요.
겸손하지 못한 심령의 결론입니다.
내 심령은 어떻습니까?
가난합니까?
겸손합니까?
모든 것이 은혜라고 믿고,
고백하십니까?
말로만 겸손 말고,
중심의 진실로 겸손하면,
하늘의 평강과 축복을 맛보고 누리리라.
종교개혁의 거인 깔뱅은,
사제의 결혼을 막는 제도에 대해,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아야 할 특별한 은사를 일반화함으로 성경을 왜곡했다고 지적합니다.(마 19:12)
산상보훈의 첫번째 말씀인,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천국의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맛보고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2024년 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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