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2. 09:41ㆍ말씀 묵상
은퇴 후 묵상을 나누며 사는 것이 내 사명이라 여기고 삽니다.
주석도 성구사전도 볼 일이 없습니다.
물려주고 나눠주었기 때문입니다.
설교준비나 목회에 쫓기지 아니하고,
성경 한 두 절을 반복해서 읽으며 묵상하니,
참 좋은 점이 많습니다.
현역시절에 수 백 번 읽고 연구하면서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쑥쑥 떠오르기도 하거니와,
울림과 감동을 받을 때도 많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마 9:19)
마태복음을 수 백 번 읽고,
마태복음 강해까지 했습니다만,
전에는 눈 길 한번 줘 본 일이 없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다급한 요청에,
그냥 따라가신 예수님을,
혈루증 여인과 연결하는 고리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게 읽힙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셨고, 제자들도 뒤따라갔다"(새번역)
너무 따지지 맙시다!
이 말씀에 꽂혀 깊이 묵상하고 얻은 결론입니다.
너무 따지지 맙시다!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가,
딸의 죽음 앞에서 다급하게 요청한 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백부장의 믿음이 없느냐?(마 8장)
이방인 백부장도 군대의 규율에 따라,
천지의 창조주의 권능을 알고,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하였거늘!
회당장씩이나 되어가지고,
내가 그동안 회당에서 가르칠 때마다,
사람들이 권세에 놀란 것을 모르느냐?
각색 병자를 고칠 때마다,
병든 자가 일어나고,
귀신이 물러갔던 것을 보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단 말이냐?
어찌하여 이방인 백부장만도 못하단 말이냐?
이렇게 책망하시거나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
우리가 배우고 새겨야 할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너무 따지지 맙시다!
주님께서 따지지 않고 일어나셨거늘!
주님께서 따지지 않고 따라가셨거늘!
"제자들도 가더니"
제자들도 따지지 않고 갔습니다.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은 말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따지지 않고 일어나 따라가십니다.
제자들도 따지지 않고 일어나 따라갑니다.
이때 무슨 논리가 필요하겠습니까?
성경 원어가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만약에 내 생각으로 따지고 싶은대로,
주님께서 나를 다 따지셨다면?
내가 어떻게 주님 앞에 설 수 있었겠습니까?
내가 감히 어찌 목회자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따진 논리대로,
주님께서 당신을 따지신다면?
과연 당신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늘 백성된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마 18:33)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돌이켜 사도가 된 바울은,
주님께서 가르치신대로 배워서,
예수의 마음을 품고,
이렇게 살았습니다.(마 11:28-30, 빌 2:5-11)
고린도전서 9:19-27절까지 모두 읽는 것이 좋습니다만.
고전 9:22-23절로 결론을 맺겠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22-23)
너무 따지지 맙시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5년 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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