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1. 09:12ㆍ말씀 묵상
오늘은 새벽 일찍 일어났습니다.
어젯밤에 일찍 잠이 든 까닭입니다.
은퇴 후 밤에 TV를 즐겨 봅니다.
내가 즐길 수 있는 프로가 초저녁 보다는,
늦은 밤에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젯밤에 TV채널을 돌리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SBS로 채널을 돌렸더니,
윤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뉴스특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명천지에(?) 웬 비상계엄?
"내가 뭘 잘못 봤나?"
헷갈려서 다른 채널로 돌렸더니,
다른 방송국들은 여전히 자기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SBS는 뉴스특보로 비상계엄을 발표하고,
조금 지나니 대부분 채널들이 뉴스특보로 비상계엄 선포를 전합니다.
몇 달 전에 야당 인사들이 계엄령을 운운할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희생과 핏값으로 성취되었거늘!
전쟁이 아니고서야 무슨 비상계엄?
좀 뻥이 심한 거 아냐?
너무 앞서 가는 것 아니야?
그런데 그 분 말이 현실화 된 것입니다.
TV속 윤대통령이 사뭇 비장한 어조로,
"반국가사범" 운운하며,
국가의 안위와 앞날을 위해서라며,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 아닌가?
멘붕이 왔습니다.
45년 전 광주가 떠올랐습니다.
광주민주화 항쟁 때 나는?
섬마을 조약도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습니다.
온세상이 캄캄하고 단절된 채,
모든 언론과 통신이 두절된 채,
가슴을 졸이며 섬마을에서 보름이 지나도록,
깜깜이와 답답함 그리고 미안함과 무력감으로 보냈습니다.
광주 이후,
박종철과 이한열,
그리고 6.29와 6공,
마침내 평화롭게 여야 정권교체,
일련의 과정에 얼마나 많은 피와 희생,
그리고 단죄와 철면피 어거지가 점철되었는지는,
우리가 알고 보고 느낀대로 입니다.
그런데 다시 비상계엄?
입에서는 육두문자가 오락가락.
머릿속으로는 온갖 씨나리오가 오락가락.
국회 의사당을 비추는 TV에는,
경찰이 통제하는가 싶더니,
헬기가 반복해서 날아다니고,
마침내 중무장한 특수부대원들이 등장합니다.
피가 끓는 청소년과 청년 시절 25년을,
박정희와 전두환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 걱정과,
나라의 앞날에 대한 염려로,
가슴이 꽉 막힌듯 답답했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저 군인들의 총구에서 총알이 나가면?
그래서 혹시라도 피를 흘리는 희생자가 나온다면?
사태는 것잡을 수 없이 혼란으로 빠져들 것입니다.
군중은 머리 없는 짐승으로 돌변하기 십상이니까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
주여!
주여!
주님 도우소서.
불상사가 반복되지 않게 하옵소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려서야 되겠습니까?
다행히,
정말 다행으로,
150 여 분만에,
사태가 마무리되고,
해프닝으로 끝났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계엄을 기획(?)한 사람들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사리를 분별한 군인들의 행동으로,
여기까지 이것으로 마무리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시는 이런 후진적인 사태가 우리나라에 생기지 않도록 주여 도우소서.
그젯밤에 늦게 잔 까닭에,
어젯밤 일찍 잠들고,
오늘은 신새벽에 말씀을 나눕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을 읽으니 두 사람이 떠오릅니다.
먼저 떠오른 사람은?
소록도에서 보았던 일본인 "하나이"병원장.
얼마나 고마왔으면 나환자들이 돈을 갹출해서 송덕비를 세웠겠는가?
또 다른 사람은?
강진에서 18년 유배생활을 하면서,
다산초당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목민심서를 위시한 엄청난 저술을 남긴 다산 정약용.
오래 전 읽은 "목민심서"
마땅히 갖춰야 할 목민관의 자질과 애민사상.
목민의 "목"은,
목사의 "목"과 같은,
칠 "목"자 입니다.
목민의 목민관이나,
교회의 목회자나,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가슴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마 8:5-6)
가버나움의 백부장.
바로 그 백부장의 긍휼.
하인이 병들었는데 백부장이 주님을 찾아 옵니다.
가족도 아니고 하인이요 종입니다.
긍휼이 아니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는 사람과 함께 울고,
아픈 사람과 함께 아파 하는 긍휼.
긍휼이 없이 어찌 목민을 하랴?
긍휼이 없는 목민관의 말로는 무능을 넘어 탐관오리!
긍휼이 없이 어찌 목회를 하랴?
긍휼 없는 목회는 삯군목자로 귀결!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백부장.
그럼에도 "이만한 믿음"이라는 칭찬을 주님께 받은 사람.
지도자요 선생이며 리더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이 긍휼히 여기는 가슴입니다.
그런 가슴이 없다면?
지도자 될 생각조차 말 것입니다.
그냥 혼자 잘 먹고 잘 살면 누가 뭐라 안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약 3:1)
선생.
지도자.
리더.
더 크고 엄중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습니다.
리더십.
도량.
긍휼히 여기는 가슴.
그리고 섬기려는 겸손한 자세가 없다면?
그냥 혼자 잘 먹고 잘 사세요.
인생 역사에 오점을 남기지 말고.
기왕 선생이 되려거든.
기왕 지도자가 되려거든.
기왕 목사 노릇하려거든.
가버나움 백부장의 가슴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그 가슴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하나님이 보우하사 당신이 몸 담은 교회 샬롬"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12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