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1. 09:11ㆍ말씀 묵상
엄친아.
엄마 친구 아들 아무개.
엄친딸.
엄마 친구 딸 아무개.
엄친아와 엄친딸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됩니다.
공부나 취직이나 결혼이나,
여러 비교 대상에서 앞 선 지인의 자녀에 대한,
부러움을 드러냄으로,
자기 자녀도 그 이상의 성취를 기대하며 사용하는 말입니다.
왕자처럼 기른 아들이 더 뛰어나고,
공주처럼 보살핀 딸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함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물론 자녀의 입장에서는,
비교 대상이 되는 것이 못마땅 하리라.
그러나 엄친아와 엄친딸을 들먹여서라도,
아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 헤아려 봅니다.
소중하게 기른 딸이 더 잘 되고,
더 많은 성취를 이루기를 바라는,
부모의 절절한 심정은 어떠랴?
새삼 예수님의 "엄친아"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의 "엄친딸"의 배경을 짚어 봅니다.
저는 그동안 예수님의 엄친아로 눅 16:8절만 생각했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니,
눅 16:8절보다 더욱 간절한 예수님의 엄친아가,
성경 곳곳에 보화처럼 알알이 박혀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물론 이 말씀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을 넘어서는,
복음의 능력을 증언합니다.(요 1:13, 마 16:17, 딤후 1:9)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난,
복음의 너비 길이 높이 깊이를,
깨닫게 해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엡 3:19)
하지만 엄친아와 엄친딸이라는 말에 비추어 생각하면?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주님의 기대와 바람이,
얼마나 절절한 지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 말씀을 각자의 처지에서 헤아려 봅시다.
나는 목사이니,
목사된 내 입장에서 보면은.
"목사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각자 자기의 입장에 대입해 보면 좋으리라.
"장로 중 아무에게서도"
"권사 중 아무에게서도"
"집사 중 아무에게서도"
.......
주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려야 할 사람이,
바로 목사 중에 나와야 할 터인데!
주님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할 사람이,
장로 중에서 많이 나와야 마땅할 터인데!
주님께서 당당하게 말씀하시도록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ㅇㅇㅇ를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행 13:22)
ㅇㅇㅇ.
바로 그 ㅇㅇㅇ에 나와 당신의 이름이 기록되기를!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12월 11일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겸손과 믿음 (1) | 2024.12.11 |
---|---|
가버나움의 백부장 (0) | 2024.12.11 |
백부장의 믿음 설명 (0) | 2024.12.11 |
완치 판정 선언 (0) | 2024.12.04 |
다가오니 손을 내밀어 (1) | 2024.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