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4. 11:02ㆍ말씀 묵상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차이가 많습니다만.
어떤 사람들은 병원을 찾는 것을 극단적으로 피합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병원을 쇼핑하듯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관계 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극단적으로 이 병원과 저 병원을,
순례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습니다.
저렇게 허구한 날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어떤 일상을 살아갈까?
분명한 것은 위중한 병을 진단 받은 후에는,
병원의 시스템과 의사의 처방에 따라,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것처럼,
정해진 코스로 달려가게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검사와 과정을 거쳐서 완치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완치 판정을 받은 분들이 말하는 과정과 표정을 자세히 보면은?
새 생명을 살게 된 사람답게,
만면에는 미소가 번지고,
말은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하며,
남은 인생을 더 보람있게 살겠다는 결의로 충만합니다.
위암 완치 판정.
폐암 완치 판정.
췌장암 완치 판정.
등등....
더구나 완치가 불가능하고,
증상을 완화하거나 늦추는 것이 최상이라는,
파킨슨이나 치매 혹은 루게릭 같은,
불치병이 완치되었다는 판정을 받는다면은?
그야말로 할렐루야!
주님께서 나병 환자를 손을 내밀어 깨끗하게 고쳐주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마 8:4)
불치의 병인 나병에서 고침을 받았으니,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전파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소문을 내고 증거함이 마땅할 터.
마땅히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서둘려야 할 것 같은데,
주님께서는 그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병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격리된 채,
처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의 자유선언이,
예수님을 증언하는 것보다 우선이었습니다.
복음 전파보다 우선인 것이 자유선언인 셈입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이 이 말씀을 해석하면서,
예수님께서 복음으로 오셨지만,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는 것을,
확증하셨다고 말합니다.(마 5:17)
물론 그런 까닭도 있겠습니다만.
주님께서 더욱 중요하게 여기신 것은,
나병 완치 판정 선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유함을 누리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오늘날 고도의 자격증을 가진 전문의가,
수치와 결과로 완치 판정을 하는 것처럼,
예수님 시대에는 제사장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에게 몸을 보여주고,
세밀한 관찰과 심사를 거쳐 완치 판정을 받으라!
그리고 모세가 명한 대로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너도 자유할 뿐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자유를 누리게 하라!
완치 판정 선언으로 자유함을 얻으라!
완치 판정 선언으로 자유함을 누리라!
완치 판정 선언으로 이제는 사람답게 살아라!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네 삶을 살아라!
노비문서를 소각하고 노비에게 자유를 주었던 선량한 소수의 주인처럼.
흑인 노예 해방으로,
흑노해방의 신기원을 이룩한,
링컨의 노예 해방 선언처럼.
살아갈 날이 첩첩산중이겠지만,
이제는 자유를 누리며 살라고,
그래서 제사장에게 완치 판정 선언을 받으라고.
제사장에게 가서 깨끗하게 나은 몸을 보이라.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요 8:32)
병으로부터 자유.
죄악의 사슬에서 자유.
흉악의 결박에서 자유.
율법주의의 굴레에서 자유.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
등등등...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갈 5:13)
말이나 생각은 물론 행동으로도,
형제나 교회에게 걸림돌 말고,
디딤돌로 살아갑시다.(고전 10:32-33, 눅 17:1-2)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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