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5. 09:27ㆍ말씀 묵상
주님의 부르심은 "곧" 따라야 합니다.
곧.
그 즉시.
머뭇거리지 말고 바로.
왜요?
곧 따르지 아니하면?
사탄이 훼방하니까요!
주님의 부르심을 곧 따르지 아니하면 어찌 됩니까?
주님의 부르심을 희석할만한 이유들이 얼마나 많아지는지요!
주님의 부르심을 그 즉시 순종하지 아니하면 어떻든가요?
주님의 부르심 말고도,
주님을 위해 할만한 일들이 왜 또 그리 많은지요?
주님의 부르심에 제자들은 그 즉시 따랐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19-22)
베드로와 안드레는,
예수님께서 부르시매,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또한,
예수님께서 부르시니,
그 즉시 배와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천대 받는 땅 갈릴리.
척박한 지역 갈리리에서,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제자를 부르시고 제자훈련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이,
곧 주님을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그 즉시 그들의 삶을 정리합니다.
배도 곧 버려 두고,
아버지도 그 즉시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성경 이야기가 이제야 납득됩니다.
사실 그동안 마 8:19-22절 말씀을,
읽고 해석은 했지만,
마음으로 흔쾌하게 수용하지는 못했거든요.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따르겠다는,
율법학자 서기관에게 주님께서 뭐라 하십니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 하시면서 사실상 제자 삼기를 거절하십니다.
그리고는,
제자 중 하나가 부친의 장례를 치르고 따르겠다는데,
오히려 죽은 자에게 장례를 맡기고,
주님을 즉시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알쏭달쏭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앞뒤 안가리고 따르겠다는데 왜 마다합니까?
깔끔하게 집안의 애경사를 정리하고 따르겠다는데 뭐가 문제입니까?
오히려 집안 대소사 잘 정리하고,
쓸데 없는 고민거리 없이한 후에 나를 따르라고,
장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인간미도 넘치고,
나중에 제자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설득력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물불 안가리고 따르겠다는 서기관은 거절하십니다.
앞뒤 재는 제자에게는,
좌고우면 말고 따르라고 강요(?)하십니다.
물론 서기관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고,
제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만.
그것만으로 마 8:19-22절 말씀이 명쾌하게 납득된 것은 아닙니다.
요점은?
제자로 부르시는 소명의 주도권이,
사람에게 있지 않고 주님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이라는 소명은,
"곧" "그 즉시" 따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즉시!
깨달은 즉시.
확인한 즉시.
감동을 받은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내 의지와 믿음으로 결단하고 따를 수도 있습니다만.
주님의 주도권과 이니셔티브를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도권을 가지고 부르실 때는,
언제든지 곧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생명이요 축복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불순종하고 내 길을 고집하다가,
사랑의 매를 맞고 달리는 기차에서 추락하여,
구멍 난 바가지 되어,
소명을 완주한 후에야,
비로소 "곧 따르니라"라는 말씀이 납득이 되었으니,
참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주님 참 애쓰셨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종을 여기까지 끌고 오시느라고.
그래서 더욱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즉시,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은혜요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곧 따르지 아니하면,
부르심에 물타기를 하게 됩니다.
소명에 그 즉시 따르지 아니하면,
다른 방법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타협안이(?) 돌출합니다.
돈 많이 벌어 헌금 많이 하겠다고.
명예와 권세있는 자리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발휘하겠노라고.
그럴듯한 물타기와 타협안으로 주님을 설득하렸던,
내 생각과 내 길이 꼼수(?)였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셨거늘!(삼상 15:22)
순종하지 아니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우상을 섬기는 것처럼 나쁜 죄라는 것을 명심할 것입니다.(삼상 15:23)
어찌 부르심 뿐이랴?
말씀에 대한 순종은 "곧"이어야 합니다.
충성도,
헌신도,
봉사도,
감동을 받은 "그 즉시" 감당해야 합니다.
아니면?
물타기와 꼼수가 어김없이 나오거든요!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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