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눈물, 아들의 눈물

2024. 4. 17. 11:12말씀 묵상

대한민국의 아들들이 군대에 갈 때는 대부분 엄마들이 웁니다.

나는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이사간 다음, 
7개월 후에 입대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눈물은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한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엄마의 눈물이든,
아버지의 눈물이든,
사랑하는 가족과 찢어지는(?) 마음이 짠(?)한 것은,
만국 공통의 감정일 것입니다. 

"누구든지 군에 복무를 하는 사람은 자기를 모집한 상관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살림살이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딤후 2:4 새번역)

시몬과 안드레가 고기 잡던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릅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도 배와 아버지 세베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릅니다.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22)

버려 두고.
놓아 두고.
버려 둔 채.

주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데는, 
과감하고 진지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단어 선택일 것입니다.

신실한 장로 친구가,
내가 나눈 묵상에 댓글을 달았습니다.

"놓아 두고"로 쓰거나,
"뒤로 하고"로 번역하면,
원문에 충실하지 못한 번역이 되느냐?

영어는 대부분 left로 번역하니,
자연스럽고 거슬릴 게 없는데,
"버려 두고"라는 우리 말 성경을 읽으면, 
영어로 throw away가 될 것이니 거북하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군사로 부름을 받은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결단하고 진지한 태도로, 
하늘나라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할 때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습니다만.

주님의 부름을 받고,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교직에 머물다가,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주님의 최종 사인을(?) 확인한 다음,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장로회 신학대학원에 입학하려고,
짐봇다리를 짊어지고 나설 때는,
아들인 내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명은 소명이고,
아내인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무기력하게 사시다가,
생계를 책임지던 아들마저 목사(?)로 부름을 받았다고,
부양해야 할 가족(?)을 뒤로 한 채,
고교를 중태한 동생에게 아버지를 맡기고,
짐봇다리 짊어지고 서울로 향하는 데,
포기한 것인지 달관한 것인지,
무표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아들인 나는, 
뜨거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책임 질 테니 염려 말고 소명 잘 감당해요"
동생의 떨리는 목소리만 귀에 남았습니다.

그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신학도와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다음 부터,
언약궤를 싣고 벧세메스로 올라가면서, 
젖먹는 새끼를 버려 두고, 
울면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는, 
암소 이야기가 한번도 그냥 읽혀지지 않았습니다.(삼상 6장)

인지상정.

시몬과 안드레가 그물을 버려 둘 때나,
야고보와 요한이 배와 아버지를 놓아두고 주님을 따를 때나,
나 처럼 미련하고 불충한 종이, 
사랑의 매를 얻어맞고서도, 
막판에 가서야 주님을 따를 때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만만치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따르지 아니하면 더욱 큰 화(?)를 당할 것입니다.

그래서 곧, 그 즉시 따라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권세와 은혜와 능력과 섭리와 축복으로 더하시리라.(마 6:33)

목회를 마무리한 지금 저의 고백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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