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22. 10:48ㆍ말씀 묵상
사울 왕이 말년에 얼마나 곤고하고 피폐했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을 봅시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삼상 28:6-7)
신앙이 병들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입니다.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로 대답을 아니하십니다.
사무엘서를 보면 자업자득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을 사울 왕이 몰살시켰습니다.
예언자들은 사울 왕을 떠나서 겉돌거나 다윗에게로 갔습니다.
그러고도 무슨 응답을 기대해요?
어불성설.
천부당 만부당입니다.
마침내 사울 왕은 블레셋 연합군에게 대패하고 초라하게 죽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고집불통의 마지막은 파멸입니다.
그런데 별을 보고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달랐습니다.
중간에 다소 어정쩡한 문제가 있었지만,
다시 하늘을 보고,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에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립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마 2:12)
꿈에 받은 지시에도 순종합니다.
다른 길로 자기 나라도 돌아갑니다.
기가 막힌 순종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순종의 결정판입니다.
순종의 끝판왕이요 최고의 모범사례라 할 것입니다.
꿈에 받은 지시에 다른 길로 돌아가다니요?
헤롯에게 은밀하게 받은 부탁이 있거늘!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길보다 하나님의 길을 가는 박수를 받을 일입니다.(사 55:8-12)
만약에 동방 박사들이 꿈에 지시를 받고도,
그냥 예루살렘을 경유해서 헤롯을 만났더라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꿈에 받은 지시만으로도,
다를 길로 그들의 나라도 돌아간,
동방 박사들을 보노라니 찔리는 것이 있습니다.
목회자로 부르시는 분명한 소명에도,
많이 망설이던 내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거절할 수 없는 소명.
아니 거절해서는 안되는 소명.
신령한 음성과 사건으로,
분명하게 보여주시고 감동하셨거늘.
망설이고,
물타기를 시도했던,
내모습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수 십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사랑의 매를 맞고서라도 돌이켰으니 은혜이지요.
하늘나라에 가기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불순종의 흔적이 내게는 있습니다.
심령에도 잘 박힌 못처럼 남아 있거니와,
몸에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세수할 때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불순종했던 내모습을 보고 순종을 다짐합니다.
꿈에 받은 지시에도 돌이켜 순종함으로,
생명의 길을 간 동방 박사들을 배우고 닮을 일입니다.
혹 분명하고 확실한 계시와 감동을 받고서도 망설이는 것이 있습니까?
순종이 생명입니다.
순종이 능력입니다.
순종이 은혜입니다.
순종이 축복입니다.
사랑의 매를 맞고서야 돌이키면?
고집불통으로 파멸한 것보다야 낫겠습니다만.
자랑할 것도 없거니와,
화를 당하기 십상입니다.(고전 9:16)
동료 제자들의 증언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던 실증주의자 도마.
못자국에 손가락을 넣기 전에는 믿지 않겠노라.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서야 믿겠노라던 도마.(요 20:25)
바로 그 도마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보지 않고 믿는 은혜와 복을 귀하게 여길지어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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