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8. 12:47ㆍ말씀 묵상
동방 박사들은 별을 보고 헤아리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사막을 횡단했습니다.
마침내 왕도 예루살렘에 도착한 동방 박사들이 묻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이 말에 헤롯은 멘붕이 왔습니다.
헤롯뿐 아니라 헤롯을 둘러싼 많은 신하들과 참모들이 불안에 휩싸였습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마 1:3)
소동한지라.
크게 불안했더라.
물이 소용돌이 치듯했더라.
속이 뒤흔들리고 당황했더라.
아니, 웬 소동?
아니, 웬 소용돌이?
어찌하여 불안하고 속이 흔들릴만큼 당황?
유대인의 왕 메시야가 나셨으니,
기뻐하고 춤추며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거 아님?
온 인류의 구세주가 유대 땅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으니,
마땅히 구주로 영접하고 경배해야 하는 거 아님?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죄와 사망의 해결자이신 구세주가 나셨으니,
마땅히 평화를 누려야 할 터인데....
오히려 소동하고 불안하며 당황하다니요?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더니.(호 4:6)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더니.(호 6:6)
인류의 죄를 해결하시려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시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동정녀를 통해서 보내시마고,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계시하고 말씀하셨거늘.(히 1:1)
그리고 마침내 아들을 보내셔서 계시와 말씀을 성취하셨거늘!(히 1:2)
박수를 치고 환영하며 잔치를 벌려야 마땅하거늘!
웬 소동?
믿음이 없으니 기뻐할 수 없습니다.(히 11:6)
성령을 받지 못했으니 성령의 일을 깨닫지 못합니다.(고전 2:10-14)
성경을 모르니 구원의 길에 이르지 못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지 못합니다.(딤후 3:15-17)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도 마땅히 환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마음이 소용돌이치며 혼동의 도가니에 빠져듭니다.
이처럼 소동하는 헤롯과 예루살렘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은혜 중에 최고의 은혜인 성육신을 보고도(요 1:14-18),
믿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요 16:9)
바로 이런 죄가 주장하는 사람은 죄의 종이라는 것을!(롬 6:16)
의가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동방 박사들처럼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먼 길도 험한 여정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은혜를 간절하게 사모하며 십자가를 감당합니다(빌 1:29).
헤롯의 소동은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온 소동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소동은?
악독한 헤롯의 만행에 대한 두려움에서 온 소동입니다.(마 10:28)
마땅히 바라보아야 할 말씀과,
약속된 소망의 나라를 붙들면 요동치 아니하리라.(시 37:30-31, 히 6:19)
말씀을 마음에 심고 하늘에 소망의 닻을 내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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