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사 주시고 사도라

2025. 3. 17. 10:50말씀 묵상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마 10:1-2)

열두 제자를 부르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열두 제자에게 권능을 주신 분도 예수님입니다.

그들을 사도라 보내신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제자로 부르심의 주도권은 주님께 있습니다.

은혜를 베푸시는 주도권 또한 주님께 있습니다.

권능을 주신 주도권 또한 주님께 있습니다.

사도라 칭하시고 보내신 주도권 역시 주님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입니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님의 주도적인 부르심에 아멘하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주권적으로 베푸시는 은혜를, 
믿음으로 받고 감당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주님께서 감당하시려는 일을,
주님 대신 보내는 것으로 믿고,
겸손하게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이 순종입니다.(눅 10:1)

거기에 교만이나 거드름이 낄 틈이 없습니다.

오직 모든 것이 은혜일 뿐입니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겠습니까?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어느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10 새번역)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나는 주님의 부르심을 물타기하며 거역했습니다. 

불순종하며 나의 길을 가다가,
달리는 기차에서 추락하는 사랑의 매를 맞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회개하고 돌이켜 순종하여,
48년째 구멍 난 바가지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그때 이후 삶은 덤이요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확실한 은혜와 흔적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육신의 정욕에 이끌릴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시험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가슴아픈 탄식이 나의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4-25)

육신의 정욕에 끌려서 그대로 가면 사망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면 생명입니다.

오늘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의 길로!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5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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