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사람

2025. 2. 28. 15:11말씀 묵상

교양이 성숙하고 과학이 발전하매,
귀신과 도깨비와 악령에 얼킨 것들이,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어린 시절에 듣거나 읽었던 동화나 이야기에는,
거의 빠짐 없이 도깨비와 귀신과 악령으로 범벅이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귀신 이야기도, 
그런 상황을 전제하고 읽어야 합니다.

물론 요즈음도 귀신과 악령의 역사는 줄었지만 존재합니다.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귀신이 쫒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마 9:32-33)

목회 하면서 귀신 들린 사람을 보았습니다.

악령에 씌어서 눈이 돌아가고, 
이상한 목소리와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래킵니다.

귀신의 사주를 받지 않고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동행한 심방대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이 사람에게서 떠나가라"

뜨거운 찬송과 간절한 기도는 물론, 
반복해서 믿음으로 선포했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

꽤 긴 시간의 영적 씨름이 이어졌습니다.
거의 두 시간 쯤(?).

기도와 찬송과 선포가 이어지고,
이윽고 귀신이 떠나가자,
그 사람이 수종들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께서,
말 못하는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 냅니다.

귀신이 쫓겨나자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합니다.

귀신이 물러가면 헷갈리던 사람이 정신을 차립니다.

귀신이 쫓겨나면 문제 행동을 하던 사람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입을 모읍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맹인이 눈을 뜬 것도,
귀신이 쫓겨난 것도,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야가 성취할 역사입니다.(사 29:18, 35:5-6)

악한 영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구원의 주님으로 치유받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국가나 사회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귀신의 사주를 받는 비극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홍길동의 답답함과 민망함은 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는 것처럼.
형을 형으로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대명천지 교양과 상식으로 운영되어야 할 공동체를,
헤까닥한(?) 사람들의 핸들링에 좌우되는,
안타까운 비극이나 참사가 반복되면 안 될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면 귀신이 물러갑니다.
주님께서 좌정하시면 귀신은 쫓겨 납니다.

주님께서 인생의 주가 되시면 언어의 기능이 정상화 됩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으로 고백되고 선포되면?

맹인도 눈을 뜨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을 하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삶에도,
교회와 민족의 현실에도,
꽉 막힌 사람들이 주도하는 세상 말고, 
정상적으로 보고 듣고 말하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5년 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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