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22. 13:16ㆍ말씀 묵상
사랑니를 뺏습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사랑니를.
그런데 왜 사랑니?
평생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생각을,
마지막 남은 사랑니를 뽑으면서,
비로소 품어봅니다.
있을 때는 모르고 살다가,
없어질 때 비로소 깨닫는 것이 인생이로구나!
사랑을 느낄 때 쯤 나오는 이빨이라고 사랑니라는데...
지혜와 지식이 왕성하게 커나갈 때 생기는 이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사랑니라 부르거나 지혜의 이빨이라 말하거나,
둘 다 철이 들어갈 때 생기는 이빨이라는 동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이빨은 철부지일 때 젖니가 빠지고 나옵니다만.
사랑니는 날 때도 아프고 뺄 때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마지막 남은 사랑니를 뺄 때,
담당 의료진의 주의 사항을 듣고,
만약의 경우지만,
유사시 해야할 것을 꼼꼼히 챙기는 것을 보면서,
"아하 이것이 상당히 큰 일(?)이로구나!"
라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마취와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사랑니를 발치하고 나오는 데,
지켜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여러가지 준수사항이 있습니다만.
강조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맨 처음 적어놓고 밑줄 치며 강조합니다.
지혈을 위해 넣어 둔 솜뭉치는,
두 시간 동안 꼭 물고 있을 것이며,
피와 침은 절대 뱉지 말고 반드시 삼키라는 것입니다.
사랑니를 발치하며 연 이틀 병원에 다니느라,
말씀을 3일간 곰삭혔습니다.
마 7:24절은 어찌 보면 산상보훈의 결론 같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
그것은 분명한 은혜요 축복이며 믿음의 시작입니다.(롬 10:17)
아무나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에바다!
주님께서 들을 귀를 열어주신 사람만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사람이라야,
말씀을 듣고 믿게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듣고 행하는 것은 또다른 영역입니다.
귀신들도 주님이심을 알고,
주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듣고 두려워할 뿐,
결코 행하지 않았습니다.(약 2:19, 막 1:24, 5:7)
주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믿음의 극진한 표현입니다.
행함은 주님에 대한 사랑이요,
주님에 대한 충성이자 헌신입니다.(요 14:21, 요일 3:18-19, 5:3)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요,
그 사람의 귀만 천국에서 배회할 것입니다.(약 2장)
"행함이 없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선언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라야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은 듣되 행함이 없으면?
그것은 믿음도 아니고 지혜도 아닙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면?
그때 비로소 살리는 믿음으로,
믿음이 완성되며,
하늘문에서 주님의 웰컴을 받으며,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라.(마 13:4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함으로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믿음의 마지막이자 가장 귀한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라는 반석 위에 굳게 섭시다.
예수님이라는 반석 위에서 요동하지 맙시다.
즉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자는 말입니다.
성령이라는 반석 위에 굳게 섭시다.
온갖 미혹의 영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성령의 반석 위에 굳게 서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요일 4:1-6)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이 우리를 지키시니,
우리 또한 온갖 악한 영과 우상을 멀리하며 살아야 합니다.(요일 5:18-21)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지혜요 믿음입니다.
듣고 행하는 것이 하나 될 때,
비로소 우리는 반석 위에 굳게 섭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11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