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7. 09:27ㆍ말씀 묵상
오래 전 교우들과 함께 문경새재를 트래킹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용하면서도 어렵지 않게,
운치가 있을 뿐아니라,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그 멋지고 좋은 길을,
교우들과 함께 걸었던 추억은,
지금도 여전히 가슴에 남았습니다.
바로 그때 함께 걷던 권사님께서 못 걷겠다며 주저앉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한 분도 나자빠집니다.
조금 젊은 분들이 부축하며 걸었습니다만.
도저히 안되겠다며 죽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경상북도 문경과 충청북도 괴산을 연결하는 문경새재인데,
전주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하면 데리러 올 것이라며 떼를 씁니다.
난감하네!
사실 문경새재길은 일반 차량이 출입이 금지된,
트래킹으로 특화된 길입니다.
두 분 권사님들이 주저앉은 위치도 애매했습니다.
출발지로 돌아가기도 멀고,
도착지는 출발지보다 좀 더 먼 지점이었습니다.
애초에 힘든 분들은 초입에서 조금 걷다가,
타고 온 버스로 가면,
버스가 도착지까지 태우고 올 것이니,
걷기 어려운 분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하시라고 말했습니다만.
어디,
사람의 마음이 남 가는 곳 다 가고 싶지,
뒤처지거나 빠지고 싶겠습니까?
두 분 모두,
호기롭게,
걱정마시라며,
얼마든지 걸을 수 있다더니,
"나 죽어요!"하고,
나자빠지는 모습에 모두가 배꼽을 쥐었습니다.
배꼽은 배꼽이고 현실은 현실.
함께 웃으면서 재촉해보았지만,
그분들의 몸 상태로는 옴도뛰도 못할 옹삭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걸 어떡하나?
걱정 반 기도 반인데,
저쪽에서 문경새재 공원 관리차량이 다가옵니다.
여호와 이레가 따로 없습니다.
할렐루야!
사정사정해서 그 두 분을 도착지까지 태워보냈습니다.
며칠 후에 만난 권사님들 왈.
그날 밤에 자다기 일어나서 한참 웃고 잤답니다.
그리고 자다기 또 일어나서 웃고 다시 잠을 청했다는 것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가 체코어랍니다.
체코의 작은 마을 주차장에 파킹을 하는데,
체코어를 몰라 애를 먹었습니다.
유럽의 공용 주차장은,
대부분 미리 주차 시간에 따라 표를 뽑아서,
운전석 앞에 넣어두는 시스템입니다.
물론 조금 발전된 곳은,
자동화되어서 나갈 때,
주차시간에 맞게 계산하는 곳도 있습니다.
그런데 체코의 작은 마을 주차장은,
유로는 안되고 체코 돈만 소용되는 곳이었습니다.
트레블 카드에도 체코 돈은 없고 유로만 있으니,
결제가 될 리가 있나?
체코 동전을 가진 분이,
어찌어찌 해서 주차권을 뺐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를 한바퀴 돌고,
구경 잘 하고 돌아와서 보니,
운전석 앞에 놓여있는 주차권이 이상합니다.
자세하게 읽어보니,
어젯밤에 오스트리아 공용 주차장에 주차했던 주차권입니다.
다행히(?),
주차 관리인이 다녀가지 않아서인지,
벌금 딱지는 없었습니다만.
주차권을 뺀 사람은,
남자 손에 주차권을 쥐어 줬다 하고,
남자 중 누구도 주차권을 받은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주차권을 뽑은 것은 확실하기에,
도둑 주차(?)를 한 것은 아니니,
그리고 단속에 걸리지 않았으니,
다행이었습니다만.
이 사람 저 사람,
지갑과 호주머니는 물론,
심지어 휴대용 가방까지 다 뒤졌지만,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주차권은 없었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며칠 후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독일에서 목회하는,
동기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 찾아가서,
예배드리기로 예정한 날입니다.
그래서 지갑을 열고 헌금을 준비하려는데,
지갑 한 쪽에 하얀 종이 영수증이 하나 있습니다.
이게 뭐지?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닙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체코를 뜻하는 cz가 있습니다.
그리고 체코의 작은 마을 공용주차장 3 시간짜리 주차를 나타내는 시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이고 이게 뭔 일이람?
범인이 바로 저였습니다.
보통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범인 자신은 아는 것인데....
나는 내가 범인(?)인 것조차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치매인가?
아무리 되짚어봐도,
주차권을 받은 기억이 없는데,
내 지갑 깊은(?) 곳에 주차권이 들어있다니요?
나는 주차권을 뽑을 때,
화장실에 갔었는데....
내 손이 아니라면,
뉘라서 내 지갑 깊은 곳에 주차권을 넣었을꼬?
오호통재라!
출발 전에 일행을 불렀습니다.
오늘 주일인데,
예배드리기 전에,
자수하고 회개하며 용서받을 일이 있다고.
무슨 일?
어떤 잘못?
뭔 죄?
주차권이 내 지갑 속에 있더라고 이실직고했습니다.
주일 아침인데,
몰랐을 땐 그렇더라도,
알고나서야 어찌 그냥 말 수 있겠냐며,
잘못을 고하고 고개를 조아렸습니다.
통촉해주시옵소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입을 떠억 벌리고,
아이고, 탄식을 하다가,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아니,
그렇다니까.
내가 분명히 남자 손에 줬는데!
남자들은 다 안받았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자기 호주머니 여기저기 다 뒤져도 주차권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꼬?
그나저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받은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가끔은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내가 잊고 살더라도,
내가 주님으로 살았고,
주님께서 내 안에 좌정하고 계시다는,
임마누엘을 소망합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2024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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