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압의 보리 밭에 불을 지른 압살롬

2023. 3. 15. 09:35말씀 묵상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사람들의 모습 중 하나를 삼하 14:28-33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대답하기 곤란한 일이나 처신하기 어려운 일에는 책임을 외면하고 시간끌기로 일관한다는 사실입니다.

갑은 대충 시간을 끌다가 적당히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을은 그 일이 해결되지 아니하면 생계가 어렵거나 인생이 꼬인다고 느끼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머리에 붉은 띠를 매거나 결사반대를 외치기 십상입니다.

요압의 중재로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압살롬은 다윗 왕의 어정쩡한 처신으로 아버지 다윗을 보지 못한 채 2년을 허송세월하며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압에게 다시 한번 왕이자 아비인 실권자 다윗과 제대로 문제해결을 촉구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요압은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처신에 능한 요압이 다윗의 눈치를 보아하니, 
다윗이 여러가지(?) 이유로 압살롬의 문제를 깨끗하게 처리할 마음가짐을 갖지 아니한 것처럼 보였으리라.
아무리 왕이지만 신정국가의 왕으로서 사울 가문을 폐하고 세워졌거늘 율법에 어긋난 것들을 적당히(?) 눈감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압살롬은 사람을 보내도 대답 없는 요압의 보리 밭에 불을 지릅니다.
성질머리 하고는?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가서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삼하 14:30-31)

을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합니다만,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추수를 앞 둔 보리 밭에 불을 질러요?
압살롬의 진면목을 유감 없이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암논을 죽여 형제살인을 범한 일이나, 요압의 보리 밭에 불을 지른 행태로 보아 압살롬이라는 사람됨의 그릇을 보여주는 성경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셩경이라는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 본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고전 10:11)
압살롬의 성급한(?) 처신에 쯧쯧(?)하며 혀를 차기는 쉽습니다만.

혀를 차는 것은 내 자유지만 혀를 차는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내하며 분별하며 처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성경이라는 영혼의 거울을 잘 보고 내게 주시는 음성을 들어야 영적인 사람이요 믿음의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혀로는 얼마든지 믿음이니, 경건이니, 사랑이니, 인내니, 희생이니 말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행동으로 보리 밭에 불을 지르는 성질머리(?) 죽이지 아니하면, 그 인생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2년을 아버지 다윗을 못 본 채 지낸 시간은 근신하고 인내하며 변화되어 새사람으로 거듭날 시간이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압실롬의 성급한 처신에 초점을 맞춰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묵상을 마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엡 5:15-16절 말씀을 객관적인 진리의 말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내게 주신 생명의 말씀으로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형편과 처지는 다르지만 근신하고 분별하며 지혜롭게 처신하도록 연단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나는 과연 압살롬에게 주어진 2년이라는 시간을 지혜롭게 선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기회로 삼고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성질과 미련한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죄의 길로 걸어가고 있습니까?(약 1:12, 잠 24:9)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생명길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고 기다리십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3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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