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없는 용서

2023. 3. 15. 09:40말씀 묵상

삼하 14장을 반복적으로 읽고 묵상하면서 아비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을 여러 각도에서 분별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육정에 끌리기 마련인 아비의 마음을 이해는 합니다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공의와 어긋날 때는?

회개 없는 용서?
편하고 좋을 것 같고 얼핏 보면 은혜로 보일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전혀 은혜가 아니요, 좋은 것도 아니며, 결코 평안 없는 결과로 귀착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삼하 14:33)

입을 맞추다. 
용서하고 화해를 했다는 상징적인 제스처입니다.
마치 집을 나간 탕자가 생각을 바꾸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용서한 것처럼.(눅 15:20)

다만 전제가 다릅니다.
탕자는 생각을 바꾸고 아버지 집이 좋은 것을 깨닫고 돌아왔습니다만, 압살롬은 생각을 바꾸지도 않았고 성급한 성질머리도 전혀 고치지 않았습니다.

근신 없는 화목?
회개 없는 용서?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봅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니라"(눅 17:3-4)

마태복음 18장 에서는 일곱 번 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들으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마 18:15)
만약에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십니다.(마 18:17)

그렇습니다.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용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진정한 복음의 의미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듣지도 아니 하거늘, 적당히 육정에 기울어 얼버무리는 것은 더 큰 죄악으로 치닫기 십상입니다.(전 8:11)

진실로 사랑한다면 근실하게 징계해서 돌이켜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해야 할 것입니다.
징계가 없다는 것은 진실로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라고 성경이 말씀하신 까닭을 상고할 필요가 있습니다.(히 12:5-8)

신령하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온전하심에 참여하고 평강한 열매를 맺으려거든.
말씀에 합당한 징계로 연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죄를 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지 사랑으로 징계하는 것. 
그  사랑의 징계를 진정한 사랑으로 깨닫고 아멘하여 거룩한 믿음의 사람으로 고침을 받아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 것이 믿음이요 은혜이며 축복입니다.(히 12:9-13)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3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