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2. 09:53ㆍ말씀 묵상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사도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를 향하신 계시의 음성을 들은 후 하늘을 향한 열린 문을 봅니다.(계 4:1)
무대가 땅에서 하늘로 옮겨집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상 교회에서 종말에 이루어질 사건과 하늘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눈물과 한숨이 점철되는 현실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늘 하늘나라를 앙망하고 살아야 하는 까닭을 사도 요한을 통해서 주님께서 구체적인 모델로 보여주신 셈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앙망하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은혜이자 능력이요 수단임을 명심합시다.(요 16:33)
밧모섬 바위동굴에서 기도와 묵상 중에 본 계시와 환상이기 때문에 상징적인 것들로 가득한 것이 요한계시록입니다.
일곱 교회가 세상에서 이런저런 비난과 조롱을 받기도 하고,
내부적으로 보아도 비판거리가 적지 않지만,
어쩌겠습니까?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인 모임이니 지상 교회는 그 어떤 교회도 완전 할 수 없거니와 말도 많고 탈도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할 십자가가 있으니,
그것이 교회가 지상에서 감당할 의무요 사명이며 책임이자 축복인 것입니다.(눅 9:23-26)
이처럼 교회와 성도가 세상에서 피말리는 선한 싸움 싸울 때,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있습니다.(계 4-18장)
일곱 인, 일곱 나팔, 용, 일곱 대접과 바벨론의 멸망 등등.
상징적인 사건들과 숫자가 계속 등장합니다.
상징으로 등장한 사건들을 팩트로 처리하면?
상징적인 숫자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하늘나라가 이상한 나라로 변질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144,000이라는 거룩하고 상징적인 숫자가 사이비 이단들이 애용하는 숫자로 남용되고,
아브라함과 이삭이나 야곱과는 한방울의 피도 안 섞인 사람들이 야곱의 열 두 지파를 들먹이는 넌센스가 등장합니다.
반드시 일어날 일이지만 상징이니 주의가 필요하고 억지로 풀지 말고 은혜로 받고 지식과 지각을 사용하여 잘 분별해야 합니다.(벧후 1:19-21, 벧후 3:14-17, 히 5:14)
사도 바울도 셋째 하늘에 올라간 신비한 체험을 하고서도 보고 듣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할까 염려되어 말하기를 멈춘다 했습니다.(고후 12:6)
언약궤!
선민 이스라엘에게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이끌고 광야를 이동할 때도,
엘리가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때도 언약궤는 소중하게 사용됩니다.
그런데 상징이던 언약궤를 우상처럼 써먹으려던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고 엘리는 그 충격적인 소식에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언약궤는 돌아옵니다.(삼상 4-6장)
바로 이 언약궤.
바벨론의 침략 후 실종됩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설은 설일 뿐.
그런데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언약궤가 보입니다.(계 11:19)
이게 뭡니까?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가 하나님이 계신 하늘 성전에 있다니요?
실재가 계신 하늘 성전에 상징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일까요?
가끔 유투브에 등장하는 영상들을 보면 감동적이고 신비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수의라든지,
골리앗 같은 거인들의 뼈라든지,
예수님께서 쓰셨다는 가시관이라든지,
등등.
존재 자체만으로도 은혜가 되고 감동을 주는 것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집착하면 믿음의 유익을 얻기보다는 변론에 휩싸이기 십상입니다.
지금도 언약궤 찾아 삼만리를 한다면?
주님께서 뭐라 하실까요?
"아이고 너 참 기특하구나" 하실까요?
아니면,
"얘야, 그럴 시간에 구원받은 시간으로 살아라"(엡 5:15)
하실까요?
하늘 성전에 언약궤를 두시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거룩하신 뜻을 잘 분별하여 오늘 하루도 구원받은 삶으로 항기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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