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7. 09:11ㆍ말씀 묵상
<몽골>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테무진이 초원의 몽골 부족을 통일하여,
대제국을 세워 칭기스칸으로 등극하는,
지난한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몽골 부족의 주도권을 움켜쥐는 마지막 결전을 치룹니다.
전투 중에 몽골 부족이 두려워하는 천둥과 번개가 요란합니다.
바로 그 상황에서 테무진은 지략과 담대함으로 승리합니다.
패장이 묻습니다.
어찌 몽골인이 두려워하는 천둥과 번개를 두려워하지 않았느냐고.
테무진이 말합니다.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맞섰더니 두려움이 물러갔다고.
사람마다 두려워하는 것들이 참 다양합니다.
그래서 그 두려운 것들이 그 사람의 트라우마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참 우스운 것들이,
당사자에게는 커다란 두려움과 염려로 작동합니다.
보편적으로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래도 생명의 문제일 것입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9)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신 목숨은 서로 다른 목숨입니다.
육신의 생명과 영원한 생명.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믿음으로 살려면?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천주교 박해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일제와 6.25를 거치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했습니다.
바로 그런 목숨을 걸어야 할 상황에 대하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받친 자는 얻으리라고!
손자 병법과 난중일기를 통해서 유명해진 말이 있습니다.
"생즉사 사즉생"
충무공 이순신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12척의 배로 330척 왜선과 일전을 겨룰 때,
두려워하는 군사들을 독려하며,
피를 토하듯 외쳤다는 말.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리라"
너나 할 것 없이 목숨이야말로 가장 소중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육신의 생명에 올인하면?
사망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히 2:15)
부활의 생명 즉 영생을 소유하면?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세상을 이기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부활의 주님을 앙망하며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은?
육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부활의 소망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5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