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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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으로 읽는 믿음
교과서에서 시를 읽고 감상하고 외웠지만 시를 써보거나 써 볼 생각초차 못한 채 시편을 수백번 읽고 암송했습니다. 그러다 코로나19로 모든 세상사를 잠시 내려놓고 주변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시를 몇 수 지어보았습니다. 누구에게 인정받거나 감수받지는 않았지만 "아하! 이럴 때 사람들이 시를 쓰는 것이로구나." 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150편으로 구성된 시편이라는 성경은 절반쯤은 다윗을 저자로 보고 그외 여러 지은이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시편에서 자기들의 형편과 처지, 그리고 심리와 속내를 읽고 경험하고 토해내며 카타르시스를 맛봅니다. 성서학자들은 시편 1편을 시편의 서론으로 그리고 150편을 결론으로 수용합니다. 성도는 마땅히 복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며 복있는 사람은 숨이..
2021.03.08 -
고난 중에 울부짖는 욥
4일간 욥기를 찬찬히 읽고 묵상했습니다. 언제 읽어도 어렵고 누구 말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 주석을 옆에 두고 읽지 않고 단어나 귀절 하나하나 구별하지 아니하고 통으로 읽기를 좋아하는 제게는 욥의 친구들의 비판일변도의 말도 욥의 변명도 구구절절 옳바르다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욥기 전체를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욥의 친구들의 말이나 논리가 욥의 말이나 논리보다 옳지 못하다고 말씀합니다.(욥 42:7) 그런데도 왜 욥의 말도 옳고 친구들의 말도 틀린 것이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일까? 그동안 성경을 묵상할 때, 욥기는 44쪽 분량이지만 한권의 책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묵상하기를 거듭했습니나만, 이번에는 4일간 여러 시간을 읽고 생각하고 되돌아보고 뜯어보다가 내 마..
2021.03.08 -
틀에 가둘 수 없는 인생사
인과응보, 권선징악! 매력적이고 좋은 프레임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나 인생사를 어찌 단순화 할 수 있으랴? 신앙인들이 쉽게 빠지는 오류 중 하나가 교리의 틀에 세상사를 모두 집어넣고 싶어합니다. 오죽하면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을 보고 제자들조차 "누구 죄로 맹인이 됐느냐?"(요 9:2)고 예수님께 묻지 않습니까? 세상을 단순화하면 편리 할 수는 있거니와 사실과는 거리가 멀어지기 십상입니다. 인과응보의 틀로 세상사를 단순화하니, 욥의 친구들이 볼 때 욥의 현실은 죄악과 회개치 않음에 대한 벌로만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위로차 왔다가 책망하고 변론하다가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집니다. 욥기 1-10장보다 11-21장에는 사용되는 언사가 훨씬 노골적으로 비판적이고 격렬해집니다...
2021.03.08 -
하나님의 기대, 사탄의 술수
욥기는 성경에서 가장 까다로운 책입니다. 세 친구들의 말이나 논리도 흠잡을 데 없고, 욥의 처지에서 넋두리하는 것을 누가 쉽게 비판하랴? 욥기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는 귀절이 욥 8:5-7절 말씀입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 누가 싫어하랴? 저도 목회하면서 교우들의 가정과 사업을 축복하며 얼마나 자주 이 말씀으로 간절하게 빌고 축복하였던지...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이 말씀은 욥의 세 친구 중 빌닷이 욥이 엘리바스의 말에 토를 달자 "그 입 다물라!"하고 못박는 말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2021.03.08 -
에스더, 성경으로 읽어야 해?
신구약 성경 66권이 기독교의 경전으로 수용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비가 많았던 것 중 하나가 에스더입니다. 왜냐고요? 1-10장까지 기록 속에 하나님이나, 여호와나, 주님이나 우리 믿는 사람이 부르는 하나님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거늘, 어찌 성경이라 할 수 있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그리스도인 자녀 이름 중에 가장 많이 애용되는 이름이 에스더라는 사실입니다. 에스더! 별이라는 뜻을 가진 예쁜 이름. 요즘으로 말하면 스타이거늘... 자녀가 스타되는 것 누가 마다하리.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없지만 하나님을 대신하는 듯한 표현은 에스더 4:14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2021.03.08 -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한 대표는 스룹바벨이어서 스룹바벨성전이라 일컫고, 성전 재건 후 성전만 덜렁 지었을 뿐 황폐해진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성벽을 재건한 사람이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는 뜻을 가진 느헤미야는 바사왕의 술시중을 드는 사람으로서 포로 2세대며 가문은 알려진 바 없는 요즘 말로 흙수저라 할 것입니다. 왕조시대에도 흙수저가 크게 쓰임 받았거늘... 개인의 자유와 능력을 맘껏 펼 수 있는 복음과 은혜가 넘치는 세상에 살면서 여전히 수저타령이나 하고 그것에 동조하며 스스로를 비하하며 사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된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요 십자가 대속이라는 최고의 사랑을 거역하는 것이리라. 수저타령 멈추시라! 암튼 선민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202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