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다는 생각들

2024. 7. 2. 12:29말씀 묵상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필시 여자가 철저하게 약자이던 시대에 만들어진 말이리라.

가난하고 힘도 없고 소외되어, 
철저하게 "을"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억울하게 만들면?

언젠가 그 사람의 가슴에 심긴 한이,
반드시 되돌아온다는 말입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그 말씀의 조선 시대 "유교 버전"쯤 될 것입니다.(갈 6:7-9)

오래 전에 "칠일 간의 서울 시장"이라는,
최단 기간의 서울 시장이라는 오명(?)을 쓰고,
한때는 젊고 전도양양하던 정치인이었으나,
도중하차 하고 잊혀져 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이 서울 시장직을 물러난 후, 
자조적으로 쓴 책 제목이,
"칠일 간의 서울 시장"이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지라,
책의 내용은 잊었지만,
또렷이 남은 것 하나가 있습니다.

혈기방장하던 젊은 시절에,
정의의 사도인양 일도양단의 칼날을 휘둘렀더니,
바로 그렇게 휘둘렀던 칼과 화살이,
자기에게 집중되니,
견뎌낼 재간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었다"는 자조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마 5:25-26)

고발하는 자.
고소하는 자.
대적하는 자.
송사하는 사람.

한국인이 유난히 고소와 고발을 남발한다는 부끄러운 통계가 있습니다만.

송사를 남발하는 한국인이 아니더라도,
고소와 고발 등 송사를 한다는 것은?

억울한 한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셨으리라.

분노와 막말로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거나 열 받게 하지 말라.

제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에게 악감정을 품게 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배를 드리기 전에,
혹은 예배를 드리다가라도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신앙행위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수직관계가 우선이지만,
그 수직관계는 반드시 이웃과의 수평관계를 전제해야 합니다.

수평관계가 빠진 수직적인 신앙행위는?
결코 하나님께 열납될 수 없다는 것이리라!

길에 있을 때에 급히.

기회를 선용하라는 말씀입니다.(엡 5:15-16)

예배 중에 성령께서 감동하시거든!

고요하게 양심의 소리가 들리거든!

이성적으로 형제가 억울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쳤다는 것이 나중에라도 깨달아지거든!

사실 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친 것을 깨닫는 것 또한 은혜입니다.

양심이 화인 맞으면? 
전혀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성이 마비되면? 
자기 중심으로만 생각합니다.

자기 고집을 내세우면서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열심이었다고 치부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뭐라 말씀합니까?

길에서,
서둘러서,
그 억울한 사람,
속이 상한 사람의 응어리를 풀어주라는 것입니다.

사화하고,
화해하고,
타협해서,
그 억울하고 속상한 감정을 만져서 응어리를 풀어주라십니다.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릅니다.

억울한 한을 품은 자의 우는 소리가 주님의 귀에 들립니다.

의인의 눈물을 외면한 것도 주님께서 아십니다.(약 5:1-6)

주님께서 기름부으신 종들이 흘린 눈물과 가슴앓이를 다 보시고 아시고 체크하십니다.

재판관과 옥리와 감옥은?

세상에서도 치뤄야 할 비판과 재판이 있거니와,
세상 끝 날, 
주님 앞에서 받을 최후의 심판을, 
반드시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고전 4:4)

이땅에서 풀지 아니하면?

하늘에서 얼렁뚱땅 풀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땅에서 풀어야 할 문제나 걸리는 것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길에서 서둘러 급히, 
억울한 것 풀어주고,
화해하고 타협하라십니다.

이땅에서 감당할 일을,
하늘로 미루는 것은 신앙의 직무유기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2024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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