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의

2024. 6. 25. 10:00말씀 묵상

복음서에는 주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대목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착각하냐구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비판하고 정죄하면 저절로 더 의인이 되는 것으로!

대부분의 뒷담화!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지금 그 자리에 없는 사람.

그래서 뭐라고 변명하거나 해명할 길이 없는 사람을, 
내 맘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며, 
삼삼오오 입을 맞춰가며, 
씹어대는 맛은 솔찬합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열린 입으로 비판하기는 쉽습니다만.
비판한 것 만큼 살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터진 입으로 정죄하는 것은 시원하고 짜릿합니다만.
정죄한 것 만큼 내가 반듯하게 살기는 어렵습니다.

왜요?
하나님께서는 조롱을 당하지 않으시거든요!(갈 6:7-8)

불꽃 같은 눈동자로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시 139편)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 못하리라"(마 5:20)

"의"?

주님께서 말씀하신 "의"는 무엇일까요?

옳을 의.
의로을 의.
마땅한 삶의 길.

의로운 행실.
의로운 생활.
선.
공의.
올바름.
경건.
등등...

그런데 "의"라는 한자 말은 더 의미심장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양을 머리에 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린 양으로 오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을 의미하는 글자입니다.

어린 양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자를 만들 때,
성경이나, 
복음의 근본 정신이나, 
기독교 신앙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표의문자인 한자 "의"를 풀어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과연 나는 어린 양으로 오신 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가?

대속의 주님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주님으로 염두에 두고 살고 있는가? 

주님의 말씀과 지시를 앞세우고 나는 그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가?

사실 마 5:20절은, 
산상보훈 팔복 이후에 말씀하신, 
마 5:13-19절 말씀을 수렴하고 통합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서 집안 모든 사람을 비치는 등불.
사람에게 알려지는 착한 행실.
율법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가르치고 배워서 행하며 사는 것.

이 모든 것을 통틀어서 "너희 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과 행실과 삶은?

당연하고도 마땅하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할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결정적 흠결은?

말은 바르나 행함이 없습니다.(마 23장)
야고보서의 표현을 빌리면 죽은 믿음입니다.(약 2장)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의는?
 
말도 바르게 행함도 반듯하게!

쉽지 않습니다만.
주님께서 말씀하신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는 그렇습니다.

주님께 말씀도 잘 배우고,
힘들어도 배운대로 잘 살면 금상첨화.

오늘도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삽시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2024년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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