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하지 말고 완전하게

2024. 6. 14. 13:47말씀 묵상

은퇴 이후 묵상을 나누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천국 가는 그날까지 계속 누리고 나누고 싶은 간절함과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고,
부르심을 거역하다 매를 맞고 돌이킨 흔적(?)과 부담을, 
계속 간직하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다짐하는 표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묵상을 나누며 간단하게 중보기도하고 축복하며 기도하는 일은 그치지 않을 계획입니다.

자녀들과 손주들을 볼 겸,
동기 목사들의 몽골 탐방이 잡혀서 서울에 오느라 묵상을 건넜습니다.

서울까지 운전하려면 넉넉하게 잠을 자는 것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가끔 교회나 기도원에서 철야 기도회를 마치고, 
잠을 미루고 긴 시간 운전하는 것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섬찟(?)합니다.

물론 사고가 나지 않고 무사한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만.

철야 기도하고,
잠을 미루고 운전하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닙니다.

정상적으로 잠을 자고 운전해도 사고가 많은 것이 현실이거늘...

잠으로 시험해서야 되겠습니까?

율법과 복음.

신앙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요소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쉬지 않고 출몰하는 사이비와 이단이 율법 폐지론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폐하셨거늘,
언제까지 율법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겠느냐는 주장입니다.

그럴듯하지요.

그런데 주님의 일침이 들립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 5:17)

율법은 선한 것이로되,
율법주의는 곤란합니다.

복음은 감사하고 찬양할 것이로데,
복음주의는 생각해 볼(?) 일입니다.

왜요?

주의는 그것을 주장하느라,
다른 것을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선한 것이로데,
율법주의는 율법만 우선하느라고 복음을 배척하기 십상입니다.

복음 또한 감사로 받을 것이로데,
복음주의는 은근히 율법을 배척하려는 속성(?)이 그 안에 잠재된 까닭입니다.

주님께서는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선지자를 완전케 하려고 오셨습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율법을 폐하거나 배척할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율법을 완전케 하시려는, 
주님의 의도와 목적을 성취할 사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십자가 대속으로 폐하신 의식적(?) 율법들이 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덕적인 율법들을 결코 폐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묵상을 나누는 것 소중합니다.

동시에 자녀를 마주하고,
손주들의 재롱을 즐기며,
동기들과 교제하며 피차 격려하는 시간 또한 마땅히 누려야 할 은혜요 축복입니다.

묵상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예수원 설립자 대천덕님과 
예수원 산골짜기를 내려오면서,
나눈 대화를 잊을 수 없습니다.

대천덕은 성공회 신부입니다.
성공회는 천주교가 아닌 개신교회입니다.

요한의 세례 터를 보고,
제가 물었습니다.

"신부님!
여기서는 세례합니까 침례합니까?"

그때 대천덕 왈

"여름에는 침례하고
겨울에는 세례합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감동과 교훈입니다.

율법과 복음.
폐해서는 안 될 신앙의 두 축입니다.

하나를 선호하여
다른 것 폐하려 말고,
둘 다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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