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교제를 위하여

2022. 11. 23. 09:29말씀 묵상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예배가 제한을 받고 성도의 교제가 어려워진 이후 목회자들의 최대 고민거리는 예배의 회복과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은퇴 이후 친구 목사들과 후배 동역자들이 섬기는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하면서 그분들의 최대 고민거리 또한 교회 회복 즉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 뺄 수 없는 것, 아니 빼서는 안 될 것이 바로 예배와 성도의 교제입니다.
오죽하면 우리들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즉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할까요?

성도의 교제란,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며, 모이기를 힘쓰고, 믿지 않는 악심을 품지 않도록 살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히 10:24-25, 3:12-15)
내가 받은 은사로 섬겨주고, 서로 나누는 대화와 교제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축복을 나누는 것입니다.(벧전 4:10-11)

이처럼 교회에서 빼서는 안 될 예배와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각각 받은 은사와 축복을 기꺼이 내어 놓는 헌신자가 필요합니다.
마르다가 주님을 위해 준비하듯, 성도의 교제를 위해서 내어놓는 사람 즉 준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다만 마르다가 동생 마리아에게 품었던 섭섭한 마음이나 아쉬운 마음은, 빼앗기지 아니 할 기쁨으로 대체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입니다.(눅 10장)

문제는 교회마다 코로나19라는 펜데믹으로 예배와 성도의 교제가 위축된 이후, 예배의 회복이 더디고, 성도의 교제가 팍팍한 가운데, 헌금만은 현상을 유지한다는 사실에 위로를 삼기 십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마르면 예배는 힘을 잃기 마련이며, 교회가 힘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다윗이 베레스웃사 사건 이후 언약궤를 다윗 성으로 메어오면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회복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국교회도 예배와 더불어 성도의 교제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삼하 6:17-19)

언약궤를 메어오는데 성공했다고 "땡"하고 종을 치지 않았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합니다. 그리고 남녀를 막론하고 떡과 고기과 건포도 떡을 나눕니다. 

예배 후 성도가 교제하려고 밥상을 차리고 차를 마시면서 받은 은혜와 축복을 나누고 간증하며 서로의 믿음과 축복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서로 교제하려면 누군가는 떡도 준비해야 하고 고기도 준비해야 하며 건포도도 준비해야 합니다. 소위 소를 누가 키울 것인가 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누가 소를 키울 것입니까?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축복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감동을 많이 받은 사람이 밥상을 차리고 소를 키우는 것입니다. 
은혜와 축복은 다다익선 하면서 밥상을 차리는 데는 인색하거나, 소를 키우는 일을 망설이는 것은 은혜와 축복에서 멀어지는 지름길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