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친 막대기 꼴 된 요압

2022. 10. 20. 09:12말씀 묵상

아브넬을 죽인 요압의 행태는 아무리 봐도 지나칩니다. 
삼하 3:22-30절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다윗은 요압이 품은 원한을 고려하여 아브넬이 다윗을 만나러 올 시간에 요압에게 군사작전을 명하여 마주치지 않도록 나름 배려한 것 같습니다.

"다윗의 신복들과 요압이 적군을 치고 크게 노략한 물건을 가지고 돌아오니 아브넬은 이미 보냄을 받아 평안히 갔고 다윗과 함께 헤브론에 있지 아니한 때라 
요압 및 요압과 함께 한 모든 군사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말하여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이 왕에게 왔더니 왕이 보내매 그가 평안히 갔나이다 하니"(삼하 3:22-23)

어떤 사람.
특정 되지 않은 사람.
어디에나 이런 사람은 있게 마련입니다.
모두가 내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요 순진한 발상입니다.
공동체의 평화나 당사자들의 뜻이나 의지와는 상관 없이 그저 순진하게(?) 곧이 곧대로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바로 이 "어떤 사람" 까닭에, 다윗과 아브넬의 밀약은 깨어지고, 요압은 다윗 왕국에 보탬이 안된다는 미명하에 잠재적 라이벌 아브넬을 제거합니다.(삼하 3:24-25)
아브넬을 제거하는 데는 성공하고, 잠재적 라이벌을 죽여 동생 아사헬을 죽인 원한은 풀었지만 "똥친 막대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똥친 막대기는 여전히 똥을 치우는 데나 쓰일 뿐입니다. 
똥친 막대기를 깨끗히 닦아서 지팡이나 지휘봉으로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침내 "토사구팽" 될 처지로 스스로 들어간 꼴입니다.
물론 반복해서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이 "이이제이"하신 셈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사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이신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사 48:17)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 37:23-24)

하나님께서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인도하시는 길로 나아가는 인생되기를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기뻐하시는 길을 믿음으로 아멘하며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윗의 의지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똥친 막대기" 요압으로 "별로 유익하지 못한 아브넬"을 "이이제이"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아멘하고 순종합시다.

계속 이어지는 다윗의 저주와 아브넬을 위한 애가와 금식으로 이어지는 다윗의 행동은 가까스로 다윗의 리더십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리고 요압을 제거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다윗의 치세가 끝나고, 솔로몬 치세 때에야 비로소 성취됩니다.

바로 이것, 
요압이라는 존재,
어찌 보면 속 시원하게 뽑아내면 좋을 것 같은 것들을 일생 품고, 달래고, 다스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생활 아닐까요?(눅 9:23-26, 고전 15:31, 고후 6:13, 잠 14:4)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