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8. 10:32ㆍ말씀 묵상
삼하 3:12-21절은 실제적인 권세를 구체화하려던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무력한 저항(?)에 무산되자 사울 왕가와 공생관계(?)를 청산하고 다윗에게 나름의 힘을 실어주려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브넬이 자기를 대신하여 전령들을 다윗에게 보내어 이르되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또 이르되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 내 손이 당신을 도와 온 이스라엘이 당신에게 돌아가게 하리이다"(삼하 3:12)
계속 나오는 아브넬의 말을 살펴보면 가관입니다.
삼하 3:17절, 19절, 21절 말씀을 찬찬히 뜯어 보면, 마치 아브넬 자신이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성취하는 도구라도 된 양, 왕조를 떼었다 붙였다 마음대로 요리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울 때는,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몰랐다가 이제야 알았다는 말인가?
그럴리가요?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자신의 이해관계와, 이런저런 계산과, 자기의 입지를 따져보고, 자기에게 유익한 대로 결행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자기 계산이나 마음대로 안되니, 마치 의의 천사라도 된 것처럼,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 밀약을 합니다. 이스라엘 장로들과 파워그룹과 의논하고 다윗에게 뒷 보장을 받습니다.
혹시 아브넬이 자신의 지난 결정이 잘못 된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켰더라면, 당연히 감사로 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넬의 행태는 회개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직 자기 위주의 계산과 술수로, 다윗 왕조에 협력하려는 것은 당장이야 다윗에게 유익했겠지만 두고두고 뒷 말이 무성했으리라.
아브넬은 사울 왕가의 몰락과 쇠퇴에는 결정타를 날렸거니와, 다윗의 강성에는 별로 유익하지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이라고 안 샐 리가 있습니까? 꿰매거나 때웠다면 모를까? 그런데 아브넬에게는 그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이해관계과 계산에 따라 움직였을 뿐입니다.
성경 곳곳에 등장하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라는 말씀을 이 상황에 대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 왕조에 별로 유익하지 못할 사람 아브넬을 하나님께서 "이이제이"하십니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원한을 품은 요압의 손을 빌어서 아브넬을 척살합니다.(삼하 3:27)
만약에 다윗이 죽였더라면, 혹은 죽이는 데 조금이라도 관여했더라면, 두고두고 뒷말이 무성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압의 손을 빌어서 척살하신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역사하십니다.
교회와 복음에 별로 유익하지 못할 사람. 하나님 나라 건설에 걸림돌이 될 사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
즉 세상과 교회를 오가며 단물만 취하려는 사람을 "이이제이"하십니다.
바로 그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자리매김하며 겸손하게 살아갑시다.(약 4:6, 10, 눅 17:10) 때가 되면 높이시리니.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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