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9. 10:16ㆍ말씀 묵상
가끔 사람들을 만나보면 그사람 특유의 빛과 향기가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34장에는 모세가 두 번째 40주야 금식기도 끝에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모세는 알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출 34:29)
온유와 겸손과 경건으로 가득한 사람은 구태여 드러내려하지 않아도 얼굴에,
표정에,
말씨에,
그리고 마음 쓰는 자세와,
인격에 변화된 것들이 알게 모르게 우러납니다.
가끔 나름대로 일정한 자리에 올랐다는 사람들이 억지로 권위를 드러내려고 표정을 근엄하게, 말씨에 억지(?)를 집어넣는 것을 봅니다.
웃지 못할 희극이요 울 수 없는 비극입니다. 요즘 쓰는 말로 웃픈 모습이지요. 자기만 모릅니다.
모세는 그 자신이 변화된 것을 알지도 느끼지도 못했고,
나중에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서야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지 않습니까?(출 34:33)
억지로 폼 잡지 않아도,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다보면, 먼저 영혼이 맑아지고,
인격과 표정은 물론 가치관과 삶의 태도까지 달라져서 향내를 풍기는 사람이 됩니다.(골 3:10, 고후 2:15-16)
주님을 향한 사랑이 극진했던 마리아가 귀한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릴 때,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한 것처럼,
숨길 수 없는 것이 사랑과 믿음과 소망으로 가득한 모습이요 인격이 아닐까요?(요 12:1-4)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선 바리새인 사울의 고발사주로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의 마지막 모습을 성경은 천사처럼 보였다고 증언합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행 6:15)
아니, 어떻게?
성경은 그 까닭과 비밀을 스데반이 성령으로 충만하고 하늘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4-56)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빛을 가까이 하면?
자연스럽게 밝아지고 빛이 나지 않을까요?
참 빛으로 오신 우리 주님 예수를 가까이 하는 그리스도인.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에게 나타나야 할 빛은 과연 어떤 빛이어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고 증언합니다.(고후 4:6)
결론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오늘 하루도 두려움의 광채나 권위 말고 예수님의 생명의 빛으로 비쳐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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