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쓰리 쿠션

2023. 6. 28. 12:16말씀 묵상

당구 시합을 보면 과학과 예술과 피나는 연습이 결합된 것을 느낍니다.

쓰리 쿠션으로 공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찌 당구뿐이랴?
일상생활과 인간관계에서도 다이렉트 말고, 
쓰리 쿠션으로 해결해야 모양새가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다윗이 복권을 시도하는 삼하 19장 11-12절 말씀을 보면서 당구의 쓰리 쿠션이 떠올랐습니다.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삼하 19:11)

왕자 압살롬이 쿠테타를 일으켜서 예루살렘을 장악했습니다.
열 두 지파 대부분이 젊은 압살롬을 환호했습니다.

멋모르고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윗의 행태에 반감을 품고 물갈이를 위해서 뛰어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비록 압살롬은 죽였지만 다윗의 입지가 엄청나게 흔들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에서, 
섣불리 왕도인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려면, 
위험 부담도 있거니와 체면 또한 말이 아닙니다.

바로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다윗이 시도한 것이 쓰리 쿠션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씁쓸하게 도망치듯 빠져나온 예루살렘을 스스로 위세를 갖추어 입성하기 보다는,
유다 지파 장로들을 동원해서 복위와 복권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을 도모합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사실은 모양새를 갖춰야 좋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예루살렘 입성에 모양새를 갖추도록, 
동원된 사람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입니다.

상황과 내용을 보면서 떠오른 것이 당구의 쓰리 쿠션이었습니다만.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 이름을 보면서 떠오른 것은 "공자 왈" 이었습니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지난 월요일에 장마를 뚫고 부산에 갔습니다.

빗 사이로 드라이브를 하며 멀리 부산까지 가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고,
하룻 밤을 친구 집에서 자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다음 날 점심은 부산 윗쪽에 있는 양산에 가서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었습니다.
답방 약속을 받고 조금 아쉬운 시간에 전주로 출발했습니다.

멀리 태백에서 전주로 온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장마 중이니 만나자고 약속한 것도 미루면 그만입니다만.
격의 없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태백에서 전주로 온다는 친구의 전갈에,
지금은 부산에 있으니 다음에 오면 더 줗겠다고 말해도 괜찮을 것입니다만.

멀리서 오겠다는 친구를 배려하여 시간만 조금 서둘렀습니다.
그야말로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였습니다.

사실 왕이었던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위풍당당하게 입성해도 누가 뭐라 말하겠습니까?

하지만 당연한 일이라도 모양새를 갖추면 훨씬 품위가 있습니다.

뻔히 수가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윗이 동원한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

그런 친구를 가졌습니까?
그 사람을 가졌는가?

바다를 보고 싶을 때 바닷가에 사는 친구?
숲이 그리울 때 산 중에 사는 친구.

얼마든지 호텔에 머무를 수도 있거니와,
다소 불편해도 친구와 부대끼며 하룻 밤을 보낼 친구.

다윗이 복위 과정에서, 
속내를 터놓고 의논한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을 보면서, 
살아오면서 만난 친구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사귈 친구들을 생각해 봅니다.

인생 대소사를 터놓고 의논할 수 있는 친구.

속이 훤히 들여다 보여도 그런 속내를 품어 줄 친구.

스스로 면목이 없을 때, 
쓰리 쿠션으로 일을 해결해 줄 친구.

때로는 생명이 걸린 문제조차도 도와주는 친구.

바로 그런 친구들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어 봅니다.

주님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이거든요.(요 15:13-16, 시 27:10, 잠 27:17)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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