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을 너그럽게

2023. 6. 5. 12:51말씀 묵상

반란군 압살롬과 생사를 건 한판승부를 펼치기 위해 출전하는 군사들을 격려하며 사열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지휘관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삼하 18:5)

김빠지는 소리 입니다.
아니, 김을 빼는 소리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 대는 철부지 압살롬과, 
목숨을 건 한판승부를 벌이기 위해 결연하게 출전하는 군사들에게 할 말인가?

왕의 입에서는 결코 나와서는 안 될 말입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온 백성들이 다 듣도록?

어찌 온 백성들이 다 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음향장치도 없는 그 시대에.
그것도 늙은 다윗이?

지휘관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말할 때에 옆에 있던 군사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삽시간에 알만한 군사들은 다 알도록 그 말이 전 군사들에게 퍼졌다는 증거입니다.

아비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만.
왕으로서는, 리더로서는 결코 합당하지 않는 말입니다.

반란을 일으킨 역적 수괴인 압살롬을 어찌 어리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 단어를 번역한 성경 여러 번역본을 비교하면 "어린"과 "소년" 혹은 "젊은"이라는 단어로 나뉩니다.

아비 입장에서야 당연히 어리다고 말하겠지만,
객관적으로는 어리다 할 수 없으니, 
"젊은"이라는 말로 바꿔 쓸 수밖에 없었으리라.

부모 입장에서야 이해가 되는 측면이 충분합니다만.
결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말입니다.

어떤 인생이라도, 
다윗의 말을 맘놓고 비난하고 비판할 만큼, 
충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식 앞에 장사 없으니까요.
자식 이길 부모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공정과 상식을 부정하고 침묵해도 된다는 말인가?

바로 여기에 우리 인생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본능도 인륜도 천륜도 충분히 고려해야 마땅할 것입니다만.
마땅히 감당해야 할 정의와 공의 그리고 상식과 법도가 있습니다.

내 편, 내 자식, 내 이익을 위해서는 한 없이 너그럽고 관대하면서.
상대 편, 다른 사람의 일에 대해서는 추상 같이 단호하다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결코 공정과 상식에 부합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결코 정의와 상식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공의와 법도를 넘어 탈선하지도 않습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이 지점에서 믿음을 언급하지 않습니다만.
믿음의 사람이 감당할 십자가를 넌지시 던집니다.

마땅히 감당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믿음이라고!
객관적인 도덕과 윤리 그리고 상식과 공정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고!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며 사느냐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 9:23-24)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믿음이라고.
자기 목숨을 잃더라고 마땅히 감당할 십자가를 지는 것이 구원을 얻는 믿음이라고.

오늘도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으로!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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