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고아 여인의 명품 연기

2023. 3. 2. 13:15말씀 묵상

손녀를 돌보는 거룩한 사역을 위해 서울살이 1년을 뒤로하고, 내 삶의 자리 전주로 돌아오느라고 묵상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딸네집에서 손녀를 돌보다가 저녁식사를 마치고 원룸으로 돌아와서 경춘선 숲길을 산책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주 5일제 손녀 돌봄사역은 단순하면서도 생명력이 가득한 손녀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눈에 밟히는 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떠나오는 일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떡하랴?

잘 적응하고 건강하고 맑고 바르게 자라도록 기도하는 일이 이제 우리가 감당할 일이려니...

서울살이 1년을 마치고 이사하는 과정에서 묵상을 스킵한 덕분에, 
오늘의 묵상은 더욱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보는 여유를 부려봅니다.

명품 배우들이 캐스팅 된 배역을 감당하려고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는 것을 인터뷰 기사나 심층 취재보도를 많이 읽었습니다.

몸무게를 20~30키로그램을 늘리기도 하거니와 줄이기도 합니다.
2~3키로도 쉽지 않거늘 어찌 열 배나 되는 20~30키로를 쉽게 감당하랴?
연기에 목을 걸지 않고서는 쉽지 않으리라.

어떤 동작이나 표정 하나를 위해서도 몇 달을 연습하기도 하거니와, 만족할만한 장면이 연출될 때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합니다.

그래서 시청자나 관객들이 특정 배우들의 연기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절대적 후원을 자청하는 팬이 되어 갑니다.

어쨌든 배우들의 연기는 실제가 아니고 연기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나 관객을 울리기도 하거니와 웃기기도 하면서 감동을 주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가짜(?)를 진짜처럼(?) 하기 때문입니다.

삼하 14장에서 나는 처음으로 성경에 기록된 명품 배우 드고아 여인의 명품 연기를 보았습니다.

그동안 수 백번 성경을 읽으면서도 드고아 여인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습니다.

I'm sorry!

나 또한 이름 없이(?) 왔다가 잊혀져 갈 사람이거늘, 
당신 역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갈 사람이거늘,
이름 없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좀 기울이며 사는 것이 우리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상주가 된 것처럼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고 죽은 사람을 위하여 오래 슬퍼하는 여인 같이 하고 왕께 들어가서 그에게 이러이러하게 말하라고
요압이 그의 입에 할 말을 넣어 주니라"(삼하 14:2-3)

극본과 감독과 연출: 요압
주연: 드고아 여인
관객: 다윗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두루 겪은 다윗 왕이 드고아 여인의 혼신의 연기에 뿅 가고 말았습니다.

"왕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삼하 14:11)

이쯤해서 목사인 나를 돌아봅니다.
나는 과연 듣는 성도들이 뿅(?)가게 얼마나 간절하게 설교했는가?

나를 보는 사람 중 몇 사람이나 내 삶을 보고 천국복음에 감동되도록 살아가고 있는가?

어쩌겠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라는 희생을 담보하고 구원을 받았으니 예수님의 친구답게 살아야지 않겠습니까?(요 15:13-14)

부활의 소망에 우리 인생의 닻을 내리고 사망의 권세를 능히 이겨내며 사는 것이 믿음이거늘!(히 6:19, 히 2:15, 고전 15:55-58)

명품 배우 아니어도,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팩트를 가슴에 품고 성령의 권능에 붙들려 사는 당신과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행 1:8, 잠 6:27-28)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