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행동거지와 그 결과

2022. 6. 17. 09:40말씀 묵상

삼상 21장을 자세히 살피면 참 아쉬운 대목이 많습니다. 최고 권력자 사울 왕에게 쫓겨 도망다니는 처지이니 앞뒤 살필 겨를이 없었겠습니나만.
그래도 다윗의 행동거지는 잘했다고 평하기는 어렵습니다.

실로가 파괴된 후 놉에 성막을 설치하고 제사를 주관하던 엘리의 증손이요 비느하스의 손자며 아히둡의 아들인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다윗이 몸을 의탁하러 갑니다.(삼상 21:1)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했다는 기록을 보면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군사독재시절에 민주화 운동권 인사들이 성당이나 절 혹은 교회를 피난처로 삼고 피신하기 일쑤였습니다.
각 종교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분분했습니다만, 
그래도 최소한의 울타리가 되어준 덕에 생명을 지키고 민주화가 지속될 수 있었으며,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일정 부분 제 몫을 감당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윗이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진설병과 칼을 내어준 것이 빌미가 되어 아히멜렉 가족을 포함한 제사장 85명과 놉에 사는 많은 사람들과 짐승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삼상 22:16-19)

놉을 방문해서 제사장을 몰살당하도록 원인제공을 한 다윗의 행동은 결코 지지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취사선택의 자율권을 주었어야 하리라.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당연하거늘,
얼떨결에 떼죽음을 당하게 하였으니 뒷감당을 어찌 하려나?

옛날 어떤 어른은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했다지요.

백로는 갈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특히 까마귀들 싸우는 곳이라면 더욱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날짐승으로 표현된 일반인도 조금이나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갈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구별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하물며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된 거룩한 사람들의 행동거지는 더더욱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들이 대학시절에 룸메이트와 나눴다는 대화가 불쑥 떠오릅니다.

"네 아버지가 목사님이라며"
"응, 그래!"
"그러면 너네 아버지는 정말 술 담배 안하시니?"
"응, 전혀 안하셔!"
"너네 아버지, 무슨 재미로 사신대?"

술과 담배가 구원과 신앙생활에 밀접한 관계는 아니지만,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적어도 술과 담배는 금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 
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그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좀 재미 없는(?) 삶을 사는 것도 재미있는 인생이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선민 그리스도인은 갈 데와 가지 말아야 할 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감당하는 사명자라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별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젊은 시절 목회자의 소명을 받았거늘,
외면하고 취직을 했다가 근무하는 회사가 망하는(?) 것을 경험하고,
"또 다른 사람까지 망하게 해서야 되겠는가?"
회개하고 돌이켜서 목사되어 소명을 완주하고 은퇴하셨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디른 사람도 복을 받게 해야죠!
복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이 역사하게 해야 마땅하거늘!
내가 복 받은 사람이라면?
나를 만나는 사람들도 내가 받은 복과 은혜를 함께 누리도록 하는 것이 믿음의 모범답안입니다.

생명의 향기를 발하도록 부름을 받았거늘, 사망의 악취를 진동하게 해서야 뒷감당을 어찌 하겠습니까?
오늘도 생명의 향기를 풍기는 걸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갑시다.(고후 2:15-16)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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