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스토리에 복잡한 속내

2022. 5. 24. 11:27말씀 묵상

드디어 삼상 17장을 벗어나서 18장으로 넘어갑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기회를 선용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렵게 얻은 기회도 흘러 보냅니다.(엡 5:15-16)

동해안의 산불로 온나라가 소란하던 시기에 방한했던 유럽의 자연생태환경 전문가의 인터뷰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도, 인터뷰의 자세한 내용도 잊었지만 요점은
"연간 강수량이 2,000미리에 근접한 국가에서 산불을 걱정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준 엄청난 물을 순식간에 거의 모두 바다로 흘러보내고, 
불이 나면 허겁지겁 소방헬기를 동원해서 먼 바다나 호수까지 날아가서 물을 길어다가 불을 끄려한다는 것은 답답하기 그지없는 처사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나같은 사람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산림청과 소방과 환경 그리고 수리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할 과제라고 여겨졌습니다.

발상의 전환!

멀리 큰 댐 말고,
여기저기 작은 호수나 저수지를 만들어서 생태계도 보존하고 방화기능도  할 뿐만아니라 불길을 차단하여 확산도 막고 유사시 가까이서 물도 퍼나를 수 있다는 단순명쾌한 논리.

삼상 18장도 짧은 스토리에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 속내가 어지럽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태와 관계를 단순화시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사울과 다윗.
왕과 신하 관계도 되거니와,
장인과 사위도 되었고,
길게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왕위 계승자도 되었습니다.
물론 사울 왕 입장에서는 가장 크고 위험한 정적으로 여기고 가슴앓이를 하다가 죽어갔지요.

바로 이 지점.
다윗이 지혜롭게 행하고 처신한 것처럼
(삼상 18:4, 14),
사울이 지혜롭게 처신했더라면?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개인적인 교훈이나 삶은 얼마든지 반면교사도 있거니와 정면교사를 삼을 수도 있습니다.

사울의 길을 따라서 함께 망할 길로 갈 수도 있거니와,
발상의 전환으로 얼마든지 생명길로 갈 수도 있으려니.(신 30:19-20)

다윗의 발탁.
다윗 입장에서는 시골 목동을 청산하고 도회지 서울로 입성하는 파격적인 변신의 기회.
더구나 군대의 장, 즉 장군으로 임명되는 어찌보면 낙하산 인사의 수혜자가 됩니다.

낙하산은 낙하산인데 백성과 신하들이 반감을 갖는게 아니고 고개를 끄덕이는 합당한 인사였으니 얼마나 다행!

여기까지 사울의 처신은 굿!
그러면 끝까지 잘 나갔더라면?
당연히 사울의 그릇이 그정도였더라면 하나님께서 버리시지도 않으셨으려니와,
사울을 왕 삼으신 것도 후회하지 않으셨으리라.(삼상 15:35)

급부상한 다윗을 발탁하여 다윗의 지혜로운 처신에 국가경영의 덕을 보았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축복이거늘!

그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계속 누리면 어디가 덧나나?

바로 이 지점이 은혜와 축복을 더불어 누리는 사람과 은혜와 축복에서 멀어지는 사람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을 가까이 두고 함께 은혜와 축복을 누릴 수도 있거니와,
시기하고 질투하다가 은혜와 축복에서 멀어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각설하고.
어려운 일이겠지만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정답입니다.(빌 2:5-11)

시인의 간절함과 간증을 한번 되새겨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되리라.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시 35:13)

"그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지 아니하더니 복이 그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의 뼈 속으로 들어갔나이다"(시 109:17-18)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