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3. 11:06ㆍ말씀 묵상
오래 전 학생들을 지도할 때 지도자인 제 눈으로 볼 때도 상당히 바른 언어습관과 식습관을 가진 청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 나이에 저렇게?"
그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반찬투정을 하더랍니다. 그래서 간장 하나로 밥을 주었더니 단식투쟁을 하더랍니다.
많은 엄마들이 처음에는 아이의 습관을 고쳐 보겠다고 시도를 합니다. 그러나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 식습관입니다.
그러면 스스로 타협을 하거나 아이와 협상을 시도합니다.
이번만 이렇게 하는거야!
좀더 자라면 고치겠거니.
이런저런 딜을 시도하고 어르기도 하고 협박(?)도 하면서 좋은 습관을 갖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아이들도 부모의 눈치를 살피면서 간(?)을 보기도 하고 나름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결론을 유도합니다.
바로 이 시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을 자기 마음이나 생각대로 좌우할 수 있는지 아니면 지켜야 할 규칙이나 도리가 있는지를 스스로 확인할 기회가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이 대목에서 손을 들고 항복합니다. 아이가 좀더 자라면 스스로 고치겠거니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기대한 것처럼 자라면서 고쳐지는 경우도 있거니와,
오히려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행동하다가 막상 세상에 나가보니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사례들이 많습니다.
집에서는 왕자나 공주처럼 맘대로 선택하고 행동했거늘,
밖에 나가보니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 고치기에는 너무 늦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반듯한 습관을 가진 청소년의 엄마는 반찬투정에 단호했습니다.
반찬투정을 넘어서 단식투쟁을 할 때 더욱 확실하게 대응했습니다.
사흘이나 밥을 안먹어서 눈알 흰자위가 드러날 때도 굳게 결심하고 이겨냈던 것입니다.
마침내 항복.
단식투쟁 끝.
밥상에 차려준 대로 뭐든지 클리어.
식습관은 물론 다른 생활습관도 오케이.
사사기 12장에 기록된 에브라임 사람들을 보면서 오래 전에 경험한 일을 소환한 까닭은 잘못된 습관으로 말미암아 치른 댓가가 너무 처절하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습관적인 시비로 42,000명이나 죽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삿 12:6)
시비도 습관이고,
윈망도 습관이며,
순종도 불순종도 습관이며,
감사도 습관입니다.(렘 22:21, 엡 5:3-4, 살전 5:16-22)
에브라임 사람들의 습관성 시비는 기드온 때에도 있었습니다.(삿 8:1-3)
기드온의 유순한 대답으로 갈등을 넘겼지만 입다를 만나서 된통으로 처절한 댓가를 치르고 말았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마음으로 시비하는 습관을 가졌다면,
언어습관인 구강구조 또한 쉽게 바꾸기 어렵습니다.
요단 나루턱에서 "십볼렛과 씹볼렛"으로 구별되어 죽음과 생명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면서 하늘나라 심판대를 생각하게 됩니다.(롬 14:10, 고후 5:10)
하늘에서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때에 내가 받을 마음의 습관은 어떨까요?
내가 치를 언어의 습관은 어떨까요?
예수님의 보혈로 죄악을 씻고 덮으신다는 복음의 은혜도 마땅히 기억하려니와,
입과 마음의 습관이 영적인 결과를 좌우한다는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고 삽시다.(롬 10:9-10)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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