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4. 10:08ㆍ말씀 묵상
신학대학원 3년을 기숙사에서 살았습니다. 돌아보면 감사하고 소중한 추억입니다. 만약 기숙사가 없었더라면, 서울에 연고가 없었던 나로서는 생각만으로도 캄캄합니다.
3년 기숙사 생활 중에 가끔 입에 올리고 귀로 들은 말이 "빈대"입니다.
처음 들을 땐 다른 방에 빈대라는 물 것들이 있는가 했더니, 자세히 들어보니 정식 기숙사 입사생이 아니고 공공연한 비밀(?)로 함께 살게 되는 학우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몇 호에 빈대 있어.
몇 호에도 있대!
군대식 간이 침대를 접어서 두었다가 잘 때만 펴서 사용하는 것으로 그 방에 사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거나 최소한 묵인할 때만 가능한 더부살이 구조였습니다.
오늘 여호수아 19장을 읽는데 시므온 지파를 묵상하니 신학대학원 기숙사 시절, 얼굴은 기억조차 없지만 존재만은 확실했던 더부살이 빈대들이 떠오릅니다.
비록 학창시절에는 빈대살이 했을망정 목사로서 목회는 떳떳하고 분명하게 기업을 차지하듯 감당하셨으리라.
아니, 어렵던 학창시절 빈대살이를 추억으로 삼고 더욱 분발하며 소외된 분들을 품으셨으리라.
유다 자손의 기업에서 제비를 뽑아 얻은 기업으로 살았던 시므온을 묵상하면 학창시절의 빈대살이 했던 학우들과 함께 떠오르는 말씀이 있습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렘애 1:1)
시므온은 야곱의 둘째 아들로서 얼마든지 크고 떳떳하게 기업을 차지할 수 있었건만 손 아래 동생 유다 지파의 기업에서 더부살이 하는 신세라니?
시므온과 레위는 여동생 디나가 세겜에게 부끄러운 일을 당했을 때 성질대로 보복하여 야곱 족속이 멸절 당할 위기에 빠뜨린 적이 있습니다.(창 34장)
그래서 야곱의 축복에서 축복이라기 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축복을(창 49:5-7) 받습니다.
게다가 광야생활을 하던 중에 시므온 지파의 족장 시므리가 바알브올 사건의 주동자가 되어 싯딤에서 모압 족속과 음행을 하고 우상을 섬기는 데 앞장 섭니다.(민 25장)
그래서인지 인구조사가 기록된 민수기를 보면 1차 인구조사 때 59,300명이던 시므온 지파가 2차 조사 때는 22,200명으로 급감합니다.(민 1장, 26장)
심지어 신명기 33장에 기록된 모세의 축복에서는 시므온 지파는 이름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 19장 본문에는 유다 기업에서 더부살이 하다가 흡수 병합되더니 존재감 없이 사라집니다..
어차피 한번 왔다 가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시므온 처럼 존재감 없이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시작은 미약해도 나중이 창대케 되기를 원하시거늘.(욥 8:5-7)
처음 나온 포도주 보다 나중에 나온 포도주가 더 질이 좋기를 기대하시거늘.(요 2:10)
적은 능력 가지고도 끝까지 말씀 지키고 주님 이름 배반치 아니하여 면류관 씌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 성전에 기둥 삼기를 원하시거늘.(계 3:7-13)
시므온을 묵상하면서 실패와 시련 없는 인생은 별로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더욱 잘 배워야 할 것은?
넘어지고 실패해도 다시 분발하고 일어서서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기대하시는 주님의 뜻에 부응하여 생명나무 과실의 축복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계 2:1-7)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