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속 추신

2022. 1. 5. 10:43말씀 묵상

젊은 청년시절 내 의지를  타오르게 한 책을 한권만 말하라면 망설임없이 빅토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들 것입니다.

어찌 악랄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분과 감히 비교하겠습니까마는, 
히틀러가 만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로고쎄라피를 주창하며 의미에의 의지를 강조한 빅토 프랭클의 삶에 대한 태도는 내게 큰 용기와 도전 그리고 영감을 주었습니다.

굶주림과 병으로 약해진 사람들을 골라내서 생체실험용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살아남기 위해서 깨어진 유리조각을 주어다가 면도를 합니다.
아직도 쓸만하다는 것을 수용소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애쓰는 장면은 처절하고 눈물겹습니다.

불순종으로 사랑의 매를 맞고 달리던 기차에서 추락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병상생활 6개월에 상처 입은 몸으로 홀로서기를 해야하는 나에게,
빅토 프랭클의 책과 삶에 대한 태도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실도 중요하거니와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렇게 선언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 1:12)

감옥에 갇혔다고 코 빠트리지 않고 오히려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소망하며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복음 전파에 진전이라.
"내게 일어난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도움을 준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빌 1:12 새번역)

사도 바울 자신은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거니와 편지를 받은 빌립보 교회도 그렇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부분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개역을 더 좋아합니다.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 1:12 개역)

그렇습니다.
바울 자신은 비록 감옥에 갇혔지만 복음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진보하리라.
비록 내가 감옥에서 꼼짝 못해도 내 안에서 역사하는 복음의 능력은 점점 확장되고 마침내 충만하여 흘러 넘치리라.

신명기 31장은 모세의 3편 설교가 끝나고 부록 처럼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부록이 아니고 그 속에 추신이 있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앞서 가십니다.(신 31:3절 8절)

하지만 불신과 불순종으로 거역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얼굴을 숨기시고 감추십니다.(신 31:17-18절)

얼굴을 숨기시면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니요?(신 31:6,8,23절)

답답하고 민망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이보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으랴?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한 모세의 태도를 배우도록 
"여호수아를 불러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신 31:14)말씀하십니다.

함께!
참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보고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대면은 못했지만 책으로 빅토 프랭클의 태도를 배우는 것처럼, 
앞뒤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상황에서도 생명을 택하며 의미를 추구하는 빅토 프랭클의 뒷모습을 따르는 것처럼, 
누군가를 배우고 닮아가는 데는 "함께"가 최고의 방법이요 지름길입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나는 삶의 순간과 고비마다 누구와 함께 했습니까?
누구를 모델로 삼고 배우고 닮아가기를 힘썼습니까?

사람은 때로 실망시키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힘들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요 16:32)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마고 약속하셨습니다.(마 28:20)
바로 그 주님만이 우리들의 영원한 모델이시며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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