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드리는 예배

2021. 3. 31. 09:03말씀 묵상

바닷속 최상위 포식자인 대왕문어가 죽으니 작은 물고기들이나 새우 심지어 고둥 같은 것조차 대왕문어의 몸덩이를 뜯어먹는 것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산 개가 죽은 사자 보다 나은 격이지요.

바다나 강에서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나 은어를 본적이 있는데 아무리 커도 죽은 것은 결코 올라가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연어라야 모천을 사모하며 목숨 걸고 올라갑니다.

오래 전 섬진강에서 사람들이 만든 물턱, 즉 물보를 넘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은어를 목격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인생경험 중 하나입니다.

죽은 것은 결코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당신의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거할 수 있을까요?

롬 12-15장은 십자가의 대속은총으로 구원 받은 성도라면!
그래서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몸을 즉 삶을 날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며 살아야 한다고 강권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적인 예배이자 신령한 제사이며 헌신이라고 강하게 선포합니다.

죽은 물고기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잠시 흘러가다가도 다시 중심을 잡고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것이 생명이고 올라가야 생명의 축복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산 믿음을 가진 성도라야 거룩한 삶, 도덕적인 삶, 윤리적인 삶을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 그리스도인이라야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며 살고,
하나님께 받은 권세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아니하고 선한 도구노릇을 잘 감당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일생을 구원받은 삶으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종류의 다양한 믿음과 추구하는 것들이 다른 사람들이 섞여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만 좋아하고 나와 다른 사람은 조금도 용납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즉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고전 5:10)

죄와 물타기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여러 종류의 문화와 습관 그리고 관점과 강조점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나의 죄와 허물까지 용납하셔서 구원 받았으니 보답하는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넓히며 살아야 합니다.(고후 6:13, 시 130:3-4)

큰 믿음도 있고 작은 믿음도 있으며, 강한 믿음도 있고 약한 믿음도 있거니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도 있고 한가지만으로도 터덕거리는 믿음도 있습니다.

죄가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받으신 사람의 영혼을 실족케 말고 용납하고 세워주고 격려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롬 14:3, 고전 8:11)

혹시라도 서로 비판하다가 피차 걸림돌이나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롬 14:13, 고전 10:32)
실덕하지 말고 덕을 세우는 삶이라야 신령한 삶입니다.(롬 14:21, 요 6:63)
오늘 하루도 신령한 삶으로 출발!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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