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15. 09:10ㆍ말씀 묵상
삼상 12장을 읽고 묵상하는 날입니다.
묵상거리가 넉넉합니다. 돌아 볼것들도 많고 아쉬운 것들도 적지 아니합니다.
정리하고 스마트폰 자판에 묵상을 기록하려는 순간,
삼상 11장 끝부분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신 날"
물론 삼상 11:12-15절에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신 날"이라는 귀절은 없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반복해서 성경을 읽고 묵상한 제 눈에 삼상 11:13절에 기록된 말씀들이 자리이동을 하면서 그렇게 보인 것 뿐입니다.
그래,
학교 교과수업마냥 진도 빼는 것에 목숨걸 일 있냐?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12장 묵상한 것을 다음으로 미루고 11장 끝부분을 살펴봅니다.
욥기는 아리송 하면서도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말씀이 참 많습니다.
그런 말씀 중 하나.
"입이 음식의 맛을 구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간하지 아니하느냐"(욥 12:11)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말을 삼가듯 귀에 필터를 두고 골라서 들어야 합니다.(시 141:3)
교만하고 방자하게 부추기는 말에 부화뇌동 말 것이며,
좌절하고 낙심케 하는 말을 주목하지도 말 것입니다.
사울의 초심은 반대자들을 용납하는 관용이 있었습니다.(삼상 11:12-13)
이러한 관용을 끝까지 유지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며 믿음으로 순종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러한 아쉬움은 사울에게는 물건너 갔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이자 미래형입니다.
거울과 경계로 삼고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리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
조금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관용은 주님을 늘 가깝게 모시고 살며, 주님께서 가까이 계심을 믿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믿는다 하면서도 벤댕이 속만큼 마음이 좁쌀만 하다면 은혜를 덜 받은 사람이요 헛되게 받은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권면합니다.
"고린도 사람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숨김 없이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넓혀 놓았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옹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이 옹졸한 것입니다. 나는 자녀들을 타이르듯이 말합니다. 보답하는 셈으로 여러분도 마음을 넓히십시오."(고후 6:11-13 새번역)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구원을 베푸신 날,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주신 날,
함께 그 복을 누리고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신 날,
함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눅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믿아들의 안타까움을 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아들,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니,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거늘.(눅 15:23,24,32)
심지어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눅 16:9 새번역)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축복.
하나님께서 베푸신 많은 은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세와 직분.
하나님의 선한 도구 되어 나누며 삽시다.
선한 청지기 되어 받은 은혜와 축복이 흘러넘쳐 생명의 역사를 이루며 삽시다.(겔 47:8-12)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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