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3. 21. 11:16ㆍ말씀 묵상
오래 전에 참 아름다운 고부간의 사랑을 본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젊은 며느리를 집에서 함께 위로하며 데리고 살던 시부모가,
일정한 기간을 지낸 후 과부된 며느리를 중매해서 결혼시키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딸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살뜰하게 함께 살다가 딸 시집 보낼 때 혼수를 장만하듯 정성껏 장만하고 모든 예를 갖춰서
친정부모처럼 며느리를 출가시키는 아름다운 시댁과 과부되었던 며느리를 보았습니다.
"아하, 저런 것이 바로 사랑이로구나"
오래된 이야기지만 현대판 나오미와 룻의 한국버전을 직접 보고 듣고 목격하며 마음으로나마 성원한 적이 있습니다.
룻기 3장은 시어미 나오미가 과부된 며느리 룻을 중매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눈으로 보면 어설프기 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그 시대의 마인드 속으로 슈웅!
모압에서 올라올 때부터 며느리를 중매하겠다고 계획한 것 아닙니다.
그때는 자기가 늙어서 소망이 없으니 고향에서 새출발하라고 권했습니다.(룻 1:12-13)
그때는 철저하게 자기 위주로 생각했습니나만,
이제는 며느리를 계대결혼 당사자로 여기고 중매를 시도한 것입니다.(룻 3:1-5)
생각 바꾸기.
자기 위주에서 상대 위주로.
내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죽을 생각에서 살 생각으로.
저주 받을 생각에서 축복으로.
바로 이렇게 생각이 바꿔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사 55:8-9)
그런데 그렇게 생각을 바꾸는 것이 모압을 떠날 때부터 든 것이 아니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살고 만나고 겪고보니
자기도 모르게 들게 된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이리저리 행할 때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 12:7) 하신 것처럼.
믿음과 행함은 언제나 손바닥과 손등처럼 하나로 연결됩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니,
용서하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고,
사람을 만나게 하실 뿐만아니라,
생각을 바꿔주시고,
생명과 축복의 길을 열어주시고, 구속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물론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별로 타당성이 없어 보이지만,
그 시대적인 상황에서는 불가피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조상의 기업을 소중히 여기며, 사회보장제도는 없고 결혼을 통해서 후손을 갖는 것이 최선인 시대였다는 것을 알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고 시어미 나오미의 생각에 전적으로 순종한 며느리 룻의 순종하는 믿음이 돋보입니다.
보아스가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보아스에게 다른 부인이 있었는지?
보아스 말고 일순위 기업 무를 자가 왜 먼저 등장하지 않았는지?
이런 것은 성경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룻이 베푼 인애"(룻 3:10)
"아름다운 마음씨"
시어미 나오미를 통해서 배운 하나님께 소망을 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간직해야 할 사람다운 도리가 돋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사사시대라는 혼란기를 통과하면서 이방 여인 룻과,
부끄러워도 회개하고 돌이켜 믿음을 회복한 나오미를 통해서,
구속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품에 안기어,
오늘 우리도 주님께서 이루시려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눅 10:1-3)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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