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5. 10:27ㆍ말씀 묵상
그리스도인들에게 참 껄끄러운 주제가 사이비와 이단입니다.
그리고 사이비와 이단은 거의 100퍼센트 재림과 연결됩니다.
재림.
주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초림 예수님이 때가 차매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구세주로 오신 것처럼,
재림 예수 또한 반드시 심판주로 오십니다.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종말을 살고 있는 우리들이 재림의 때를 기다리며 살지만 그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입니다.
오죽하면 주님께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막 13:32-33)
이처럼 재림의 때를 알지 못하면서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 신앙의 역동성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너리즘에 젖거나 빠지게도 합니다.
재림신앙의 역동성이 사라지면 무기력한 신앙생활 즉 매너리즘에 빠지고,
그렇다고 재림신앙에 기울거나 집착(?)하면 사이비 이단에 노출되어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니
그것이 문제로다.
창세기 이후 거짓 교사들의 멸망케 하는 가르침은 계속 있었고 앞으로도 주님 재림하시기까지 계속 출현할 것입니다.
사이비 이단 거짓 교사들은
진리 대신 파멸로 이끌면서도 달콤하게 광명의 천사처럼, 혹은 사도나 의로운 일꾼처럼 가장하여 미혹합니다.
(벧후 2:1-4, 고후 11:13-15)
재림신앙이라는 역동성의 끈을 놓으면 무기력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고,
재림신앙을 너무 강조하면 사탄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기 쉽다는 이 딜레마를 어째?
단방약은 없습니다.
말씀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성령을 좇아 성령의 충만을 유지하면서,
분별력을 가지고 오직 주님만을 앙망하면서
"하루를 천 년 같이 그리고 천 년을 하루 같이"살아야 합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의 은혜와 축복 속에서 천년을 살듯,
천 년을 살아도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루 같이 살아야 한다고 베드로는 강조합니다.(벧후 3:8)
노아시대에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도
"마른 하늘에 무슨 홍수심판이냐?"
조롱하던 사람들이 대홍수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믿음 한조각 붙들고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하던 의로운 롯을 조롱하던 사람들 모두 불과 유황심판으로 죽었다고 베드로는 강조합니다.(벧후 2:4-9)
선지자라 칭했던 발람은 돈을 사랑하여 탐욕을 좇다가 나귀에게 책망을 당하고도 돌이키지 아니하매,
어그러진 길을 가다가 마침내 술사로 죽임을 당했다고 성경은 증거합니다.(유 1:11, 수 13:22)
멸망 당한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미혹에 넘어간 무리들에게 주님께서 행하신 결말을 보았으니 우리가 살아갈 길은 분명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니라"(벧후 3:9)
우리 인생들에게 허락된 남은 삶은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주님께서 은혜로 주신
구원의 축복으로 살아야 할 시간입니다.(엡 5:15)
바로 그 주님께서 알지 못하는 시간에 도둑 같이 오실 것이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마땅할까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1-13)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하루를 살아도 천년을 살 것처럼,
천년을 살아도 하룻동안 주님께 헌신하고 사랑하듯,
즐겁고 행복하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분복입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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