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5. 09:07ㆍ말씀 묵상
사도행전이라고 부르지만 예수님의 12제자 행적 말고 바나바와 스데반 그리고 사울에서 변화된 바울의 행적이 더 많습니다.
편집의 관점에서 보면 베드로와 요한 외에 다른 제자들은 사도행전에서 통으로 편집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대세였던 사도들이 이견 없이 사도행전을 복음서 다음으로 성경에 넣도록 허용한(?) 것을 보면 그들의 가슴 싸이즈가 얼마나 위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그만 기득권이나 갑의 자리 하나라도 목을 걸고 사수하려는 사람들이라면 자기들의 면면이 생략되고 엉뚱한(?) 사람들의 기록이 교회에 회람되어 두루 읽히고 박수를 크게 받아도 시비하지 아니하고 기꺼이 주님의 이름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한 통큰 사람들이어라.(빌 1:18)
성경은 반복해서 구원 받은 성도들의 마음이 넓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고후 6:13)
우리들의 삶이 피곤하고 고달픈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 싸이즈가 옹졸한 것이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이 속좁은 옹졸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제발 좀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넓히고 살아가시기를!
사울이라는 바울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부활의 증인되고, 초대교회 공동체의 공인을 받는데는 바나바의 역할이 컸습니다.(행 9:27)
바울의 보증인이 된 셈이지요.
바나바!
위로의 아들!
권위를 가진 사람!
착하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
겸손하여 바울의 사수였다가
나중되는 사람으로 물러선 사람!
후세 많은 사람들은 바울에게 멘토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죽어서 멘토 된 스데반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서 멘토 역할을 감당한 바나바라고 말합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의 재청합니다.
순교자 스데반!
면류관 받아 쓴 스데반!
예수님이 주님 되고 부활하셨음을 목숨 걸고 증언한 스데반!
돌을 들고 치려는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음에도 주눅들지 않고 하늘을 우러르며 보좌 우편에서 면류관을 들고 복음의 증인들에게 주려고 준비 중인 주님을 바라보고
죽음 앞에서도 천사같은 얼굴로 죽어간 사람!
스데반은 비록 죽었지만 사도 바울의 믿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신앙의 모델이자 멘토로 기능합니다.
어찌 사도 바울에게 뿐이랴?
오늘 천국을 사모하고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 또한 스데반을 멘토 삼고 그의 뒷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힘들고 고달플 때.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에 붙들리지 말고,
스데반 처럼 하늘을 우러릅시다.
돌을 들어 치려는 사람들만 주목하면 어찌 평화를 누리랴?
그런데 스데반은 눈을 들어 하늘보좌를 봅니다.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봅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천사같은 얼굴로 보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핍박하고 교회를 억압하던 사울에게 일평생 신앙의 모델로 자리매김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라.
예수를 바라보라.
하늘에 소망의 닻을 내리라.
스데반을 멘토 삼은 사도 바울은
선한 싸움 끝까지 싸우고,
달려갈 길 마쳤으며,
믿음을 지키고,
면류관이 예비된 것을 확신하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예비된 면류관은 어떤 것일까요?
범털?
아니면 개털?
세상에서 박수 다 받아버리면 하늘에서는 꽝!
감추어진 믿음의 열매가 하나하나, 은근하게 쌓여 가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
2021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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