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께서 어찌 이런 일을
다윗이 인구조사에 격동되어 급한 마음으로 군사령관 요압에게 인구조사를 명합니다.
이 때 왕명을 받은 요압이 대답한 것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와 교훈을 줍니다.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사령관들을 재촉한지라"(삼하 24:3-4)
인생을 살아보면,
비로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반대 의견을 말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몇번이나 생각하고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게 됩니다.
친구나 보통의 관계에서도 그렇거늘,
하물며 윗사람이나 상사 혹은 사장이나 대표에게 반대 의견을 말한다?
그것,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니, 매우 어렵습니다.
하물며 왕조시대에 왕의 명령에 토를 단다?
그것 보통 마음과 각오가 아니고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압이 입을 열어 왕의 명령에 조심스럽게 반대 의견을 말합니다.
삼하 24:3-4절은 요약되었습니다만.
요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하자면,
요압은 다윗의 인구 조사 명령이,
하나님의 책망과 진노를 받을 일이라는 것을 캐치한 것입니다.
아니,
요압조차 알 수 있는 일을 어찌 다윗이 모를 수가 있습니까?
다윗이 자기 감정에 몰입한 까닭입니다.
다윗이 자기 생각에 너무 골몰한 까닭입니다.
자기 감정에 너무 집중하면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기 십상입니다.
자기 생각에 너무 골몰하면 반드시 들어야 할 말을 듣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기 쉽습니다.
바로 그때 옆에 있는 사람이 분별하고 말해 줄 때가 있습니다.
요압처럼 어렵게 입을 열어 말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바로 이때 귀를 열어 그 말을 듣습니다.
은혜를 입을 사람은 살리는 소리에 아멘하고 생명을 선택합니다.
복 받을 사람은 사람이나 환경이나 심지어 짐승을 통해서라도 들려주는 음성에 자기 생각을 바꿉니다.
왜요?
하나님께서는 때로 나귀의 입을 열기도 하십니다.(민 22:28)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다른 나라의 왕인 바로 느고를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대하 35:22)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물에 있기에 귀를 열고 들으면 살 길이 있습니다.(롬 1:20, 시 19편, 막 7:34)
안타깝게도 다윗은 요압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습니다.
오히려 명령을 재촉했습니다.
마침내 백성 칠만 명이 전염병으로 죽습니다.(삼하 24:15)
아니,
똥인지 된장인지 꼭 맛을 봐야 아는 것입니까?
매가 아픈지 안아픈지 꼭 맞아봐야 아는 겁니까?
이런 미련 밤퉁이 같으니라고!
성경은 다윗의 범죄와 처절한 댓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리하지 말라.(고전 10장)
귀를 열고 자연이나 짐승 혹은 사람을 통해서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에 아멘하며 생명길로 나아갑시다.(마 7:13-14)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