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열심과 분별력

전주산돌 2023. 7. 8. 21:07

열심 없이 뭔가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열심만으로 뛰어난 삶을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윗의 예루살렘 귀환작전에서 벌어진 시므이의 처신을 두고 열받은 아비새를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가로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삼하 19:21 개역)

다윗 왕을 위한 아비새의 열심.
기름 부으신 자를 위한 아비새의 열심.

그 열심을 누가 탓하랴?
배워야 할 열심입니다.

만약 아비새의 열심 조차 없었더라면?

목숨을 구걸하는 시므이의 농간 앞에서,
다윗 또한 왕 다운 처신을 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그나마 아비새의 열심이 있었기에!

다윗은 의연하게 왕 다운 처신으로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내가 다시 왕으로 복위하는 날이거늘.
경사스런 날이거늘.
기쁘고 좋은 날이거늘.

어찌 목숨을 구걸하러 서둘러 찾아온 사람을 죽이랴?

사실 아비새의 열심은 이때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초라하게 도망칠 때에, 
저주하고 돌을 던지던 시므이를 쫓아가서 머리를 베려했던 열심을 가진 사람입니다.(삼하 16장)

소가 없으면 외양간은 깨끗하겠지만,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는, 
잠언의 말씀을 떠올려 봅니다.

아비새의 열심은 다윗을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장치입니다.

만약 이런 아비새의 열심조차 없었더라면 다윗의 리더십이나 도량은 결코 돋보이지 못하리라.

그러니 아비새의 열심은 매우 고마운 일이요 마땅히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그렇다고 열심대로 모든 것을 행하면?

다윗 왕국의 안정에 마이너스.
하나님 나라 건설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열심은 필요하되,
분별을 더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리라.

다윗 왕의 체면을 위한, 
아비새의 열심을 보면서, 
교회와 복음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열심을 생각해봅니다.

나는 과연 어떤 열심을 품었는가?

주님을 위해 어떤 각오와 사명을 가졌나?

주님의 몸된 교회의 평안과 부흥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수고를 마다하지 아니했던 적이 있었던가?

주님의 피묻은 복음을 위해 내가 포기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꺼이 손해를 감수한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과 교회와 복음을 위해 내 몸과 마음에 간직한 흔적이 무엇입니까?(갈 6:17)

열심이라는 흔적은 간직하되,
그 열심은 반드시 분별력이라는 렌즈를 통과해야 합니다.

내가 볼 때는 열심이지만.
주님께서 보실 때 철부지라면?

그 열심은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그 열심이 오히려 주님의 명예를 실추하기 십상이거든요.(롬 2:24)

내가 생각할 때는 열심이지만.
말씀에 비춰볼 때 어긋난다면?

그 열심은 말씀의 가르침으로 교정되어야 마땅할 터.

내 생각대로 진행하면?
오히려 주님의 몸된 교회의 평안을 깨트리기 십상입니다.

내가 판단할 때는 열심 같지만.
성령의 빛과 인도하심에 거슬린다면?

당연히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는 것이 믿음이요 순종입니다.

행 16장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전도 행적을 보면 아시아로 가려던 발걸음을 마게도니아로 전환합니다.

그 과정은 매우 유의미합니다.

성령이 못하게 하시고.(행 16:6)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않고.(행 16:7)

마게도냐 사람이 도와달라는 환상이 보이니.(행 16:9)

바울과 일행이 하나님께서 아시아로 가는 것을 막으시고 마게도냐로 부르셨다고 인정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행 16:10)

오늘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도,
중요한 선택과 결정의 순간마다,
이러한 분별력을 포함한 열심이 필요합니다.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