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으면
인공지능 AI 발전에 기대하는 것은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동시에 AI의 눈부신 발전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 또한 사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귀찮아하거나 힘들어 하는 일을 처리하도록 각종 AI를 만들었는데,
만약에 AI가 선을 넘어 사람을 지배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집에서 기르는 개를 훈련하는 프로그램을 가끔 봅니다.
문제를 가진 개들의 문제는 대부분 개를 돌보는 보호자의 문제였습니다.
사랑한답시고,
예뻐한답시고,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개를 중심으로 살다보니,
어느새 개가 주인 노릇을 합니다.
그런데 보호자는,
종노릇을 하면서도,
자기가 그 개를 돌본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을 많이 봅니다.
아버지로서는 다윗의 탄식이 마땅합니다.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삼하 19:4)
아버지로서 다윗의 탄식은 이해가 되고 그럴 수 있겠다는 측면이 있습니다만.
왕으로서는 선을 넘는 일입니다.
성경이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라고 기록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이 왕으로서 선을 넘으니,
요압이 신하로서 선을 넘습니다.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 드리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더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삼하 19:5-6)
왕이 선을 넘으니 최측근 실세 장군 요압이 선을 넘습니다.
선을 넘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국가 사이에 정해진 국경이라는 선을 넘으면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웃 사이에도 토지 경계로 시비가 붙으면 소송으로 번집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부부싸움이 생깁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선을 넘는 데서 부터 출발합니다.
다윗이 아버지로서 탄식하는 것과,
왕으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요압의 항변은 다소 오버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팩트에 기반해서 다윗을 추종했던 사람들이 가졌을 법한 심리를 묘사한 측면이 강합니다.
선을 지키고 살 때 평화가 유지됩니다.
국가 간에도,
이웃 사이에도,
부부나 친구 혹은 형제나 자매 혹은 친구 사이에도!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우리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구세주 예수님과 구원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감화 감동하시고 인도하시며 주장하시는 성령님과,
그 성령님의 능력에 붙들려 사는 영적인 사람 또한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선을 지키는 것이 믿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에 기록된 말씀의 지혜를 배웁시다.
"종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양육하면 그가 나중에는 자식인 체하리라"(잠 29:21)
샬롬!
구멍 난 바가지 전중식 목사